#A씨(32)는 명절을 맞아 회사에서 나온 스팸 선물세트를 중고거래 플랫폼에 내놨다. 지난 설 명절 때 받은 스팸도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필요가 없어서다. 당초 명절 복지 차원에서 받은 상품인 만큼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도 남는 장사라는 그는 이를 통해 번 돈을 생활비에 보태 쓸 예정이다.
#B씨(35)는 회사로부터 샴푸 등 생활용품 세트를 받았지만 부모님께 드릴 예정이다. B씨는 이미 수년 전부터 본인에게 맞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 중에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그는 매번 명절 때마다 사용되는 선물세트 포장 쓰레기들이 달갑지만은 않다. B씨는 차라리 백화점 상품권이 더욱 실용적이라고 전했다.
MZ세대 사이에서 고가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리셀 문화가 최근 생필품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추석 명절 때 회사에서 들어온 선물세트는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이들은 본인에게 불필요한 제품의 경우 환경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큰 부담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선물을 주는 기업은 물론, 선물세트를 만드는 기업들은 친환경 등 MZ세대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와 취향을 반영한 제품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16일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 따르면 추석 명절 이후 다양한 선물세트가 판매되고 있다. 스팸, 참치캔, 생활용품, 건강기능식품 등 각종 선물세트는 인터넷 최저가 대비 평균 20~50% 가까이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실제 추석 기간부터 지금까지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최근 1주일간 500여 개가 넘는 명절 선물세트 판매글이 올라왔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지난 추석 연휴 기간이던 3일과 4일 주말 이틀간 중고거래 홈 피드 검색어 순위에 '선물세트'가 4위에 올랐다. 중고나라는 이같은 상황을 활용해 지난달 22일부터 스팸 선물세트를 직접 나서 매입하고 이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같은 선물세트 판매는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제품을 되파는 ‘리셀 문화’가 생필품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리셀 문화의 시작은 고가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 수요가 명품 구매로 이어졌다. 오픈런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그마저도 구매하지 못할 경우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구매하게 됐다. 이 기간 머스트잇·트렌비·발란 등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은 리셀 시장을 더욱 키웠다.
최근에는 생필품 영역으로까지 리셀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MZ세대의 리셀에 대한 인식이 단순히 특정 영역의 제품군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실용성을 중요시 여기는 MZ세대의 ‘가치소비’ 영역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최근 고물가에 대한 부담이 맞물리면서 보다 저렴하게 필요에 의한 구매 수요가 있어 벌어진 현상이라고 봤다.
업계 관계자는 “MZ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더욱 가치소비를 중요시한다. 아무리 회사에서 복지 차원이라며 스팸, 생필품 세트 등을 선물해봤자 본인의 가치와 맞지 않거나 소비하지 않는 영역의 제품이라면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경제활동의 주역이 될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선물세트 구성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은희 교수(인하대 소비자학과)는 “선물이란 것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괴리감이 존재한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동일한 제품이 오거나 불필요한 제품이 올 경우 주는 사람의 성의와 관계없이 짐이 될 수 있다”며 “선물세트를 되판다는 것이 성의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실용성에 무게를 두고 판단하는 MZ세대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는 사람은 어떤 선물을 주면 좋을지 지속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고민은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선물을 주는 기업과 선물을 만드는 기업 모두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적절한 선물과 친환경적인 포장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 쓰레기가 크게 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더군다나 명절만 되면 선물세트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가 매번 너무나 많은 만큼 이왕이면 받는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선물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며 “선물세트는 만드는 기업들도 친환경 포장에 대해 더욱 연구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식품 배송이 늘면서 보냉백 포장이 많아졌다. 대부분 버려진다. 포장을 과하게 안하고 포장재료는 생분해될 수 있도록 연구해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