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인생,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쿡리뷰]

유한한 인생,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쿡리뷰]

기사승인 2022-09-20 06:00:26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포스터

만약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 순간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 떠오른다면, 첫사랑을 남편과 함께 찾는다면. 평범한 생의 마지막 순간, 평범하지 못한 상황이 연이어 펼쳐진다. 낯설고 당황스러운 건 극 중 세연(염정아)도,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도 마찬가지다. 다소 뜬금없이 등장하는 경쾌한 음악과 춤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그 자리에 호기심을 가져다 놓는다. 극 중 등장하는 가수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처럼,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정해져 있지만 알 수 없는 이야기로 깊숙이 이끈다.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버스를 탔다가 병원에 늦은 세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건강 검진 결과 진봉(류승룡)은 세연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진봉은 평소와 다름없이 세연에게 퉁명스럽게 잔소리를 하는 못된 남편으로 시간을 보낸다.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하던 세연은 첫사랑 정우(옹성우)를 떠올린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정우를 찾아 무작정 떠난다는 세연을 보다 못한 진봉은 마지못해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

잘 알려진 익숙한 대중가요를 엮어 뮤지컬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장르 영화다. 동시에 첫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는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음악들과 바람이 느껴지는 것처럼 신나는 여행길이 만드는 상승효과가 시한부 인생이란 신파를 만나 부딪친다. 즐거울 일이 없는 현실을 음악과 여행이 잠시나마 잊게 하는 상황을 그대로 체험하게 한다. 음악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느끼는 동시에 유한한 삶에서 발견하는 의미를 곱씹게 한다.

시한부 인생을 다룬 영화들의 관습에서 조금 벗어난 영화다.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며 후회와 미련을 느끼는 대신, 현재를 직시하며 기분 좋게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다. 세연은 세상일에 달관한 사람처럼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순간의 감정을 풍부하게 채우는 춤과 노래는 세연의 감정과 상황을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작은 것에 기뻐하고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세연의 캐릭터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과 영화 톤에 더 없이 잘 맞아떨어진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

낯선 상황에 헤매는 건 주변 인물들이다. 순탄하게 흘러갈 수 있던 이야기는 진봉과 자녀들로 인해 굴곡 있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가족들은 세연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당황하고 방황한다. 영화는 가장 가까이 있고 가장 의지하지만, 고마움을 몰랐던 이들이 반성하고 미안해하는 과정을 지나친다. 대신 일종의 동화처럼 보다 극적인 구성과 비현실적인 상황들로 끌고 간다.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면 행복한 가족의 우여곡절로 보이겠지만, 가까이에서 세연에게 몰입하면 납득하기 힘든 전개다. 장면과 장면으로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붙이는 영상매체 문법보다 몇 분씩 이어지는 노래로 이어지는 뮤지컬의 속성으로 채운 영화인만큼, 개연성의 빈틈이 눈에 띈다.

이문세의 ‘조조할인’과 ‘알 수 없는 인생’부터 신중현의 ‘미인’,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토이의 ‘뜨거운 안녕’까지 다양한 세대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명곡들이 가득하다. 반 년 넘게 보컬 레슨을 받은 배우들이 한 곡당 5~6회씩 녹음하며 공들인 노래들이 자연스럽게 음악에 집중하게 한다. 세연의 고등학교 시절을 연기한 배우 박세완과 세연의 첫사랑 옹성우가 등장하는 모든 과거 회상 장면들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학생 운동을 하며 처음 만나 첫 데이트에서 서울극장을 찾아 영화 ‘사랑과 영혼’(감독 제리 주커)을 본 세연과 진봉과 같은 세대인 관객들이 특히 더 공감하지 않을까.

오는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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