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오빠들에게 보내는 웃픈 이별 통보 ‘성덕’ [쿡리뷰]

범죄자 오빠들에게 보내는 웃픈 이별 통보 ‘성덕’ [쿡리뷰]

기사승인 2022-09-23 06:00:09
영화 ‘성덕’ 포스터

내가 좋아하는 오빠가 어느 날 범죄자가 됐다. 모두가 하늘에서 지하로 굴러떨어진 인기 연예인의 몰락에 집중할 때, 말 못 하고 슬퍼하는 팬들이 있었다. 성덕(성공한 덕후)일수록 마음의 낙폭은 컸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오빠를 아직 잊지 못하는 팬들도 남아있다. 영화 ‘성덕’을 연출한 오세연 감독은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성덕’은 한순간에 ‘덕질’을 강제 종료 당한 팬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방송까지 출연해 좋아하는 연예인 앞에서 팬레터를 읽었던 성덕 오세연 감독은 카메라 앞에서 범죄 사실이 드러난 이후 느낀 심정을 고백한다. 그동안 소중하게 모든 앨범과 굿즈 장례식을 치르고 성덕사를 방문해 그에게 일어난 일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자신처럼 좋아해서 행복했고, 좋아해서 고통받은 팬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에너지가 폭발한다. 더없이 리얼한 대화에 웃음이 터지다가도 다시 가만히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세상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려 있을 때 주목하지 않았던 반대편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카메라를 비춘다. 어떤 피해자들이 발생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차례로 생각하게 한다. 사건을 보도한 기자를 감독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석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지반을 넓히는 과정 역시 돋보인다.

영화 ‘성덕’ 스틸컷

감독의 자기 고백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비슷한 경험을 한 팬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자조하고 좋아했던 연예인을 향해 단호한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들은 ‘성덕’의 백미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만 죗값은 달게 받으라거나, 살아 있는 사람은 우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정약용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팬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터진다. 동시에 슬픔이 밀려온다. 누군가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일에 담긴 의미는 생각처럼 가볍지 않다. 무대가 아닌 경찰서와 법원으로 간 누군가의 오빠들이 ‘성덕’을 보고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1999년생으로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인 오세연 감독의 데뷔작이다. 각본, 촬영, 편집부터 인터뷰어로 출연까지 하는 등 기획에서 완성까지 약 3년이 걸렸다. 지난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된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제25회 우디네극동영화제와 제7회 런던아시아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오는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