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여우가 여자로 변신 돌아다녀...엿 폭탄으로 여우 사냥 [근대뉴스]

한반도, 여우가 여자로 변신 돌아다녀...엿 폭탄으로 여우 사냥 [근대뉴스]

[MZ세대를 위한 '현대문으로 읽는 근대뉴스'] 여우가 나타났다
인천, 전북 익산 등 곳에서 여자들 밤출입 못해...끝내 한반도 여우 멸종

기사승인 2022-09-26 09:44:03
1924년 4월 7일

인천부 송현리(현 송현동) 부근 산에서는 매일 밤이면 여우가 내려와서 사람으로 변하여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매일 밤 어스름 할 때 송현산 마루턱(현 송현근린공원 추정)에서 여우가 내려와 아녀자로 변신해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송현동 일대 여자들은 이 소문이 난 후 무서워서 밤출입도 못한다더라.(출전 조선일보)

1924년 12월 1일

경북 성주군 가천면 마수동에 사는 김기광(25)은 지난 24일 자기 집에서 여우 잡을 화약을 만드는 중 잘못되어 화약이 폭발하여 두 손이 절단되고 양 눈이 빠지는 사고를 입었다. 또한 이로인해 전신이 새카맣게 타고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 사고로 김기광의 처 박옥선(28)과 딸 명련(5)과 소련(2)도 폭발 현장에 있다가 중상을 입었다. 가옥도 일부 파괴되었다.

김기광은 본래 여우 잡이를 직업으로 삼고 겨울이 되면 화약 만들기로 바삐 지내는 사람이라 하더라. (출전 조선일보)

먹이를 앞에 두고 주의를 경계하는 일본 여우. 일본 중부에 사는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2010년대 후반 직접 찍은 것이다. 노무라는 1970년대 전후 한국 청계천 빈민 어린이 구제를 위해 힘쓴 '서울명예시민'이다. 하지만 한국의 여우는 멸종됐다. 사진=노무라 모토유키  
■ 해설

1930년대 무렵까지 한반도는 잦은 여우 출몰로 민심이 흉흉했다. ‘공동묘지와 여우’가 갖는 공포가 시대 상황과 맞물려 증폭되어 민심이 흉흉했다고 할 수 있다. 밤마다 여자로 변신한 여우가 돌아다녀 여자들이 밤마실을 못한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1924년 1월 12일자 동아일보.

전북 익산 황화면 안심리 구씨(40) 여인은 변소에서 쭈그려 앉은 채 죽었다.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동네 인근에 여우가 며칠 밤을 울어 괴변이 있을 것 같았는데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날 부로 밤출입을 끊었다는 보도다.

조선말. 민씨일족의 부패와 무능으로 결국 일본 낭인들에 의해 국모 민비가 ‘여우사냥(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치욕을 당한 뒤 나라를 빼앗겼다. 그리고 식민지 백성이 된 이들에겐 희망이 없었다.

사실 조선은 500년 동안 제사 중심의 봉건적 체제를 유지했다. 죽은 자가 산자를 지배하는 형국이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묘자리를 만들어 섬기다보니 가문 또는 공동묘지 천지였다. 그 죽음의 공간엔 늘 세태를 꼬집는 ‘여우 설화’가 여성 폄하와 맞물려 만들어졌다.

구미호가 남자를 꼬여 시집을 간 걸 강감찬 장군이 구해줬다거나, 여우 동생을 물리친 서거정 설화를 비롯해 ‘여우가 두레박을 쓰고 삼밭에 든 것 같다’는 등의 갖가지 속담은 수탈당하던 백성들의 팍팍한 현실을 담았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여우 목도리 수요가 크게 늘면서 민간에서는 ‘여우 사냥’이 농민들의 쏠쏠한 부업이 되었다. 여우 개체가 많은 곳에선 직업적인 여우 사냥꾼이 있었다. 여우 목도리 패션 유행 때문이었다.

민간의 여우 사냥 기술 중 가장 흔히 쓰던 것이 민가에서 폭약 제조를 통한 포획이었다. 1935년 3월 9일자 동아일보는 ‘현재 여우 사냥에 쓰는 방법은 퍽 간단하여 엿에다가 폭약을 싼 것을 여우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놓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여우가 엿을 먹으면 폭발하여 죽는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어린이들이 엿 폭탄을 밟아 사망하는 등 애꿎은 인명 피해가 컸다. 당시 일제 경무국 발표로 하루 2~3건의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여우 사냥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한국 여우 개체 수는 급격히 줄어 명맥만 유지하다 1978년 지리산에서 잡힌 것이 마지막 여우였다는 보고다.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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