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그라운드를 떠난다.
이대호는 8일 오후 5시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리는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시즌 최종전을 끝으로 22년에 걸친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2001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4순위로 롯데의 지명을 받은 이대호는 해외에서 뛴 5시즌을 제외하고 롯데에서만 17년을 뛴 ‘원클럽맨’이다 그가 남긴 기록은 통산 1970경기 출전 타율 0.309(7114타수 2198안타) 374홈런 1424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00에 달한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도 맹활약을 펼치면서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명도 붙었다.
커리어 내내 맹타를 휘두른 그는 최근 2년간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올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올해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활약을 펼치면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몇몇 팬들은 ‘은퇴를 철회해달라’면서 아쉬워하기도 했다.
22년간 야구팬들을 웃고 울렸던 이대호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순간을 쿠키뉴스가 돌아봤다.
① 유일무이한 ‘세계 신기록’…9경기 연속 홈런
2010년 8월 14일 광주 목말 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맞대결. 이날 경기에는 이대호의 대기록 달성 현장을 보기 위해 어느 때보다 많은 관중이 들어섰다.
롯데가 3대 0의 리드를 잡던 2회 초 이대호의 두 번째 타석. 2사 1, 2루 상황에서 상대 투수 김희걸의 포크볼을 그대로 밀어 쳤고, 공은 쭉쭉 뻗어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겼다. 2010년 8월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을 시작으로 ‘9경기 연속 홈런’을 달성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평소 세리머니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이대호는 그라운드를 돌고 나서 헬멧을 벗고 환호하며 대기록 달성을 만끽하기도 했다.
이대호가 기록한 9경기 연속 홈런은 아직 깨지지 않은 세계 신기록이다. 이전 기록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켄 그리피 주니어(시애틀·1993년), 돈 매팅리(뉴욕 양키스·1987년), 대일 롱(피츠버그·1956년) 등이 기록한 8경기다. 이대호가 신기록을 달성한 이후 이 기록을 넘어선 선수는 아직 없다.
이대호가 9경기 연속을 때려낸 2010시즌은 그에게 ‘최고의 시즌’으로 꼽힌다. 2010년에 KBO리그 역사 최초로 ‘타격 7관왕(타율·홈런·타점·득점·안타·출루율·장타율)’에 오르며 정점을 찍은 시즌으로 기억 남는다.
② 일본 시리즈 MVP
이대호는 KBO리그에서 17년간 롯데 유니폼을 입고 뛰었지만 단 1번도 한국 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할 정도로 우승과는 연이 없는 선수였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달랐다.
2011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FA) 신분이 된 이대호는 일본의 버팔로 오릭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 오릭스와 계약 종료가 된 이후 “이제는 우승을 하고 싶다”면서 강팀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다.
소프트뱅크 이적 첫 시즌에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한 그는 2015시즌에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정규 시즌에 우치카와 세이치에게 4번 타자 자리를 내줬지만, 141경기에 나서 타율 0.283, 31홈런, 98타점을 기록했다. 타율은 일본 진출 가장 저조했지만,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는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포스트 시즌에 접어들어서는 더욱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지바롯데 마린스와 퍼시픽리그 파이널스테이지 3경기에서 12타수 5안타(타율 0.417) 2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행을 이끌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일본시리즈에서는 타율 0.500(16타수 8안타) 2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2년 연속 우승을 견인했다. 우치카와가 늑골 부상으로 일본시리즈에 나서지 못하자 이대호는 4번 타자로 나섰다. 이대호는 소프트뱅크가 승리한 4경기 중 3경기에서 결승타를 때려내며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일본 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우승 직후 소속팀인 소프트뱅크는 이대호에게 파격적인 조건이 달린 재계약을 제시했지만, 이대호는 이를 뿌리치고 자신의 꿈인 MLB 진출에 도전한다. 그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400만 달러(한화 56억원)에 스플릿 계약(MLB 소속일 때와 마이너리그 소속일 때의 연봉이 다른 계약)을 맺었다. 이대호는 미국 진출 첫 시즌에 타율 0.253(292타수 74안타) 14홈런 49타점으로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③ ‘도쿄대첩’의 주인공 된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는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칭에 걸맞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도 빼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에서 중심 타자 역할을 맡았다. 국제대회 41경기에서 통산 타율 0.323(133타수 43안타) 7홈런 41타점을 기록했다.
이대호가 태극마크를 달고 뛴 경기 중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일본과 준결승전은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경기다. 당시 한국 타선은 일본의 선발 투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를 상대로 허공만 휘저었다. 7회까지 안타를 딱 1개밖에 때려내지 못했으며, 삼진은 무려 11개나 당하면서 패배의 기운이 대표팀을 사로잡았다.
오타니가 내려가고 9회초 한국은 기적을 썼다. 선두 타자인 오재원(두산 베어스)과 손아섭(NC 다이노스) 다이노스가 바뀐 투수 노리모토 다카히로를 상대로 안타를 치며 주자 1,2루를 만들었다. 이후 정근우(은퇴)가 3루수를 뚫는 우익수 앞 안타로 1대 3으로 추격했다. 후속 타자 이용규(키움 히어로즈)는 몸에 맞는 볼로 주자가 만루를 채웠다. 일본은 마츠이 유키를 급하게 투입했지만, 김현수(LG 트윈스)는 밀어내기 볼넷으로 1점을 더 올렸다.
이후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 이대호. 이날 2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던 그는 바뀐 투수 마쓰이 히로토시를 상대로 4구째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4대 3 역전에 성공했다. 일본의 ‘야구 중심’ 도쿄돔에 비수를 꽂는 순간이었다. 이대호는 2루 베이스를 밟은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치며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일본을 잡고 결승전에 오른 한국은 미국을 8대 0으로 꺾고 초대 대회 우승팀이 됐다. 이대호는 대회 베스트 11 지명타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④ 누구보다 화려했던 ‘라스트 댄스’
이대호는 롯데와의 계약 종료를 앞둔 올 시즌 개막 전 “1년만 더 뛰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KBO는 “이대호가 국내 리그와 국제대회에서 활약했던 공로를 인정한다”며 이승엽(2017년)에 이은 역대 두 번째 은퇴 투어 주자로 선정했다. 지난 7월 올스타전을 시작으로 9개의 구장을 돈 뒤 이제 롯데 사직구장에서 딱 1경기만 남겨두고 있다.
은퇴 시즌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이대호는 올해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현재 그의 시즌 기록은 타율 0.332(536타수 178안타), 23홈런 100타점 OPS 0.882다. 40세가 넘는 선수의 기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다. 은퇴 시즌에 100타점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도 남게 됐다.
명장면도 여러 번 연출한 이대호다. 특히 지난달 20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터뜨린 홈런은 한층 극적이었다. 롯데가 4대 5로 끌려가던 9회초 1사 만루에서 상대 구원 강재민을 상대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역전 그랜드슬램을 터뜨렸다. 이대호는 ‘빠던(배트 플립)’까지 선보이며 팬서비스를 제대로 했다.
이대호가 롯데에서 커리어 내내 달고 뛴 등번호 10번은 8일 경기가 끝나면 영구결번처리 된다. 이는 故 최동원(11번)에 이어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구 결번이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