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많은 곳 무서워”…출근길 두려워진 시민들

“사람 많은 곳 무서워”…출근길 두려워진 시민들

출퇴근 시간 바꾸고, 약속 장소도 사람 없는 곳으로
안전불감증이 ‘불안’으로…달라진 인식
다중이용시설 안전수칙 개정 필요성도 제기

기사승인 2022-11-02 06:00:05

‘밀치고 치이고’ 전쟁 같은 출근길. 고속터미널역을 이용하는 최지원씨(30)는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탈 엄두가 안 났다. 어떻게든 끼어 탔던 예전과 달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이태원 참사 영상을 본 이후 만원 지하철 하차 시 인파에 밀려 깔리는 자신을 상상하게 됐기 때문이다.

11월1일 기준 156명의 사망자를 불러온 이태원 참사. 지난 29일 폭 4m 내외의 이태원 거리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대규모 희생자를 일으킨 압사 사고다. 

이번 사태 원인 중 하나로 ‘안전불감증’이 대두되고 있다. 안전불감증이란 위험을 감지하더라도 ‘그렇지 않을 것’ 혹은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말한다. 당시 핼러윈을을 즐기기 위해 모여들었던 사람들도 사고가 짐작되기 전까진 과밀 지역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안전불감증은 출퇴근 시간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느낄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낙상사고, 발빠짐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데다, 자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더욱 이동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사람이 많은 출퇴근 시간 에스컬레이터에서 누군가 한 명이 넘어지게 되면 도미노처럼 사람들이 무너질 우려가 높다.

한국철도공사에서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뛰지 마세요’, ‘안전바 잡기’, ‘두줄 서기’ 안내 포스터를 부착해 놓았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들은 보기 힘들다. 설령 ‘위험할 수 있다’ 생각하더라도 ‘그게 내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걷지 않기, 뛰지 않기 안내문은 무색하게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고 있다. 내려가거나 걸어가면서 어깨를 부딪히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사진=박선혜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 인식이 다소 바뀌었다. 그 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SNS를 통해 접한 영상으로 공포심을 얻은 사람들이 인구 밀집 지역을 경계하게 된 것이다. 

매일 출근을 위해 인파 밀집지역으로 유명한 신도림역을 거쳐야하는 신다정씨(28)도 마찬가지다. 그는 “직장 동료들 역시 출퇴근길이 무섭다하더라. 회사에서는 유연근무제를 적극 이용하라는 말도 나왔다. 조금 더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출근하고자 한다”며 “예전엔 그냥 사람이 많으면 ‘조심히 가야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 뒤에서 민다고 느끼면 덜컹 겁이나 예민해진다. 약속장소도 일부러 사람 없는데로 잡으려 한다”고 언급했다.

2호선 홍대입구에서 만난 김모씨(53세·남)도 “예전부터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퇴근 시간 계단에서 내려올 때 사람들에 밀려 한 번 넘어진 이후로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서 “이번 사태 이후로 아이들에게도 사람 많은 곳을 조심하라 위험성을 알렸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저녁마다 어디인지 확인하려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번 사태를 통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향후 이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람들이 스스로 갖게 된 불안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형 반디심리연구소 대표는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하다고 본다. 끔찍한 사고의 당사자가 내 지인이고 이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불안이 장기적으로도 발전적인 방향이 돼야 한다”며 “‘안전은 당연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한다. 바로 나부터 시작한다’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실감한다면 이는 긍정적이다. 최소한의 규칙을 준수하면서 범위 안에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세상은 안전하지 않고, 누구도 믿을 수 없어. 철저히 두려워야 해’라는 마음으로 잔뜩 굳은 경계를 한다면 결과는 부정적일 것”이라며 “이런 경우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분노, 혐오, 배척을 불러온다. 부정적인 방향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두려움을 풀어줘야 한다. 이런 경우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심리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전불감증 대비할 때…‘다중이용시설 이용규칙’도 개정해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안전불감증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국민 인식을 전환하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다중이용시설 안전수칙’을 재정비하고자 한다.

기존 행정안전부의 ‘다중이용시설 안전수칙’에는 주최자가 있는 대규모 실내 행사, 야외 행사의 경우에는 지침이 존재한다. 시설별 안전관리 및 안전위험요인, 조속한 정비 방법 등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일례로 공연장 안전수칙에서는 △입장과 퇴장 시에는 공연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사람이 몰리는 출입문에서는 질서를 지키고 통제구역에는 절대 출입하지 않는다 △압사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공연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안전한 장소로 대피한 후에는 사고 장소로 다시 들어가지 않다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주최자가 없는 행사나 모임에는 별도의 안전수칙이 정해져 있지 않다.

박종현 행정안전부 사회재난대응정책관은 “이번 이태원 사고와 같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 모임 이런 것들이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가 됐다”며 “경찰청과 함께 사고 조사를 철저히 해서 원인을 밝혀낸 다음에, 이를 바탕으로 대책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외뿐만 아니라 주최자가 없는 실내 공연과 같은 경우도 보완할 것”이라며 “안전교육이나 안전관리지표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도 학교 안전교육 관련 지침 개정 작업을 긴급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개정되는 표준안에는 생활안전 영역 안에 ‘다중이용시설 안전수칙’ 내용을 강화키로 했다. 특히 기존 공연장 등의 다중이용시설 주의사항에 그쳤던 교육 과정을 확대해 불특정 다수가 모인 군중 밀집 지역 안전교육도 가르칠 계획이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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