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회구성원”… 일할 맛 나는 청각장애인 네일숍

“우리도 사회구성원”… 일할 맛 나는 청각장애인 네일숍

청각장애인 네일케어숍 용산역 섬섬옥수
단순노무직 종사자 40.6%… ‘맞춤형’ 일자리 개발 시급

기사승인 2022-11-07 06:01:01
섬섬옥수 용산역점.   사진=김은빈 기자

“이제야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요.”

지난 2일 섬섬옥수 용산역점에서 만난 백지연(33)씨가 구화로 말했다. 구화는 농아가 입술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으로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발성연습을 통해 음성언어로 말하는 의사소통 방법이다.

지연씨는 고등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러나 전공이 직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대구에 내려가 화장품 제조 공장에 취업했다. 화장품을 조립하는 단순 반복 노동을 하며 지연씨는 꿈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한국도시철도공사와 장애인고용공단이 낸 모집공고를 봤다. 네일아티스트를 구한다는 공고였다. 지연씨는 놓치면 안 될 기회라고 생각해서 용기 내 지원했다. 2020년 10월, 일산직업능력개발원에 훈련생으로 입학한 뒤 6개월간 교육을 받고 SK쉴더스가 운영하는 섬섬옥수 용산역점에서 일하게 됐다.

지연씨는 배우면 배울수록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네일아트 국가 자격증을 비롯해 네일아트 관련 자격증을 5개나 보유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만큼 네일아트를 배우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지연씨는 네일관리사로 돈을 벌 수 있어 ‘일할 맛’이 난다며 웃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4시간 밖에 일할 수 없어 아쉽다고도 했다.

그는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면서 “중증장애인도 열심히 기술을 익히면 네일아트처럼 전문 분야에서 충분히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섬섬옥수 용산역점에서 네일케어를 하는 모습.   사진=김은빈 기자

기차표 소지 시 무료로 네일케어… 서비스 만족도도 높아

섬섬옥수 용산역점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모두 지연씨와 같은 청각장애인이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동안 교대 근무를 한다.

손님과의 소통은 매장 안에 비치돼 있는 태블릿PC의 ‘마음 톡’ 앱을 통해 가능하다. 비장애인의 말을 문자로 변환해 보여주고, 동시에 말을 할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 문자로 쓴 내용은 음성으로 변환해 들려준다.

지난 2일 오전 10시에 방문한 섬섬옥수 용산역점에는 예약손님 한 명이 네일케어를 받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기차를 타는 일이 잦아 시간이 맞을 경우 섬섬옥수를 이용한다고 밝힌 박혜원(58)씨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기쁘다”며 “청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일을 하는 데 있어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섬섬옥수가 하나의 기준이 돼서 비슷한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이분들이 자립해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섬섬옥수 용산역점을 운영하는 기업인 SK쉴더스에 따르면 개소 당시보다 예약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당일 KTX 예매표를 소지하면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사회적 가치를 높게 평가해 일부러 찾으려는 손님들이 늘었다.

섬섬옥수 매장 안에 비치돼 있는 태블릿PC의 ‘마음 톡’ 앱을 통해 소통이 가능하다.   사진=김은빈 기자

단순 노무직 치중된 장애인 일자리… 다양성 제고해야

장애인 일자리는 단순 노무직에 치중돼 있다. 장애인고용공단의 ‘2021년 4분기 장애인 구인구직 및 취업동향’에 따르면 장애인 취업자 중 단순노무 종사자가 6192명으로, 40.6%에 육박했다. 사무종사자가 3207명(21%)로 2배 가까이에 달하는 수치다.

단순 노동 비중이 줄어드는 일자리 경향과 달리 장애인 일자리는 여전히 1·2차 산업에 집중돼 있다. 장애인의 자활을 돕는 다양한 업종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섬섬옥수 역시 이같은 고민 끝에 탄생한 일자리다. 섬섬옥수는 장애인고용공단이 한국철도공사, 민간기업 등과 협업해 취업에 취약한 여성 중증장애인 맞춤형으로 만든 일자리다. 현재 용산역을 비롯해 5개 매장이 운영 중이며, 영등포역과 안양역 2개 역사가 추가 개소될 예정이다. 보수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경우 당해연도 최저시급,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경우 시급 1만원~1만4000원 선으로 형성돼 있다.

신성식 장애인고용공단 과장은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 경력단절 여성 장애인들이 취업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근무자들도 본인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대국민 서비스를 하는 것에 있어 매우 만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노무직 외에 다양한 일자리가 개발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자격증 취득을 하거나 훈련을 받아야 할 수 있는 전문직종은 단순 일자리보다 고용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급여 측면에서도 최저시급 보다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근무자 입장에서도 일하는 데 만족도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섬섬옥수 용산역점에서 백지연(33)씨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김은빈 기자

참여 기업의 만족도 역시 높다. 장애인고용부담금과 법인세를 대폭 절감하는 등 실질적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헌에 따른 기업 이미지 홍보 등 뒤따라오는 혜택도 크다.

SK쉴더스 관계자는 “처음에는 ‘이분들이 할 수 있을까’ 색안경을 끼고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1년 넘게 운영하다 보니 큰 어려움이 없었다. 2호점 개소를 앞두고 있고, 앞으로도 더 오픈하기 위해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ESG 경영의 일환으로 사회적 약자인 중증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싶었고 마침 섬섬옥수라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줘서 뜻 깊게 참여하고 있다”며 “장애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업 이미지에도 기여하는 부분이라 1석 2조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애인고용공단은 앞으로도 다양한 장애인 업종 개발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신 과장은 “일자리 다양성 측면에서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예술·문화형 일자리, 장년층 장애인 대상 사무직 일자리 등 다양한 맞춤형 일자리를 개발하고 있다. 장애인 개개인의 특성과 직무능력에 따라 일하는 방식을 조정하고,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직업훈련과 인력양성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용산역 스타약국 옆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섬섬옥수 매장을 찾을 수 있다.   사진=김은빈 기자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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