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노민우 “나를 만든 건 결국 사랑” [쿠키인터뷰]

‘엘리자벳’ 노민우 “나를 만든 건 결국 사랑”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11-08 06:00:15
가수 겸 배우 노민우. n.CH엔터테인먼트

가수 겸 배우 노민우는 요즘 매일 ‘방구석 공연’을 연다. 지난 8월30일 개막한 뮤지컬 ‘엘리자벳’에 토드(죽음) 역으로 캐스팅된 뒤 생긴 변화다. ‘엘리자벳’ 넘버(노래)를 틀어두고 리허설하듯 공연을 연습한다. 덕분에 다른 캐릭터들이 부르는 노래도 몽땅 외웠다.

노민우의 연습 본능은 ‘엘리자벳’ 배우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분장실에서도 쉴 새 없이 노래를 연습해 동료 배우들이 ‘저러다 지치겠다’고 걱정할 정도다. “아직도 첫 공연 때만큼 긴장돼요. 하지만 살아있는 기분이에요.” 최근 서울 도곡동 EMK뮤지컬컴퍼니 회의실에서 만난 노민우는 이렇게 말했다.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초대 황후인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의 생애를 각색한 작품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주인공 엘리자벳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한 뒤 엄격한 황실 규율에 영혼을 속박 당한다. 토드는 살아 움직이는 죽음이다. ‘나만이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며 엘리자벳을 유혹한다. 사람도 신도 아닌 무언가. 노민우는 토드를 한 가지 이미지로 고정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토드는 냉혹하지만 뜨거운, 드라이아이스 같은 존재”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죽고 싶은 감정을 의인화한 캐릭터가 토드라고 봤어요. 누군가에겐 남자로, 누군가에겐 여자나 동물로도 느껴지는 캐릭터가 토드죠. 엘리자벳에게 다가갈 때와 루돌프에게 다가갈 때 다른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루돌프와 있을 땐 중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려고 해요. 엘리자벳에게 접근할 때는 토드가 엘리자벳의 일부로 느껴지도록 연기하고 있어요. 엘리자벳의 어두운 면이 토드라는 캐릭터로 탄생했다고 봤습니다.”

노민우 ‘엘리자벳’ 공연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노민우는 5년 전 ‘엘리자벳’ 오디션을 처음 제안 받았다. 당시엔 거절했다. 자신이 토드를 연기할 그릇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건 권태였다. 2004년 밴드 더 트랙스 멤버로 데뷔해 20년 가까이 활동하다보니, 누구도 그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더란다. 도전을 갈망하던 그는 ‘엘리자벳’에 자신을 내던진 뒤로 “벌거숭이가 된 기분”을 느끼고 있다. 데뷔 18년 만에 신인으로 돌아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냉철한 평가를 받아서다. 하지만 싫지는 않다고 했다. 오히려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노민우가 ‘엘리자벳’에 열정을 불태우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자신의 우상인 데이비드 보위가 녹아든 캐릭터를 연기해서다. 노민우는 “‘엘리자벳’을 준비하면서 토드가 데이비드 보위를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운명이라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날개 달린 의상과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치장한 채 무대에 오르면 그는 꼭 데이비드 보위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남자 여자 경계를 두지 않으려 했어요. 어머니께서 제가 딸일 줄 알고 여자 옷을 산뜩 사두신 탓에 그 옷들을 입고 자랐거든요. 학창 시절에는 ‘남자가 이래선 안 돼’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반항심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여자 옷을 입으려 체중도 줄였죠. 그때 데이비드 보위를 알게 됐어요. 경계를 허무는 아이콘이잖아요, 데이비드 보위는. 제겐 그가 돌파구 같은 존재였어요. 그래서 토드를 연기하는 순간마다 꿈을 펼치는 기분이에요.”

노민우 ‘엘리자벳’ 공연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성장통도 겪었다. 공연 개막 전 ‘마지막 춤’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때의 일이다. 유튜브에 그를 비난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SNS로 ‘네가 무슨 토드냐’는 공격도 많이 받았다. 노민우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에 일일이 답글을 달았다. 첫 공연에선 스스로를 “줌토드”로 소개하기도 했다. 자신을 향한 조롱을 별명으로 승화한 말이었다. 관객들은 그를 박수로 응원했다. 노민우는 “비판을 수용하되 내 색깔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적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공연에서 보여주자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이런 노민우에게 관객들은 ‘성장형 토드’ ‘진화하는 토드’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노민우가 악플에 의연할 수 있던 배경엔 밴드 호피폴라 멤버로 활동 중인 동생 아일도 있다. 그는 “동생이 나를 많이 의지하고 따라한다. 언젠가 동생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면 ‘형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보여줄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돌아보면 노민우는 한순간도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다. 가수에서 배우로, 음악감독과 뮤지컬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내년에는 새 드라마와 음반으로도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그는 “내 원동력은 결국 사랑이다. 팬들이 주는 사랑, 가족을 향한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다른 뮤지컬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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