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응답하라 우리술' ...전통 술에 관한 사회학

신간 '응답하라 우리술' ...전통 술에 관한 사회학

술을 마시는 과정은 인문학...신화와 고고학까지 연결

기사승인 2022-11-21 11:16:45
우리 술의 전통 제조과정과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의 술에 얽힌 흥미로운 애주사를 민속·풍속적이며 미생물과학으로까지 전개한 인문역사교양서 ‘응답하라 우리 술’(도서출판 깊은샘)이 출간됐다.

저자 김승호는 1990년대 문화답사 베스트셀러 '아는 만큼 보이는 문화답사' 등  다양한 기존의 성과를 바탕으로 저자의 인문학 향취를 담아 책을 풀어냈다.
우리 전통 술에 담긴 인문학. 현장 중심의 저술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술을 오래도록 변치 않는 맛과 향을 음미할 수 있는 로컬푸드 제조 공법에서 찾고 있다.

‘하등 멥쌀 1말을 절구에 찧어 굵은 체에 쳐 낸다. 쌀가루를 시루에 쪄떡을 만든 다음, 차게 식기를 기다려 물 1~2말과 누룩 4장(여름은 4장 반)을 가루 내어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이불로 덮어 겨울 10일, 여름 7일간 발효시킨다.’

저자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오는 막걸리의 제조 방법도 소개한다. 전통술을 만드는 데는 쌀과 누룩, 그리고 물로 빚으며 간혹 쌀이 아닌 지역의 재료가 등장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가령 제주도의 오메기(차좁쌀의 사투리)와 남도의 보리, 그리고 밀과 메밀, 감자 정도가 쌀이 아니다.

이렇게 곡물과 누룩, 그리고 물이 만난 뒤 일주일 또는 열흘이 지나면 막걸리가 만들어진다. 좀 더 고급스럽게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덧술을 해 한 번을 더하면 이양주, 두 번을 더하면 삼양주, 이런 식으로 술밥을 더 주어 가면 고급주가 된다.

저자는 우리의 건강한 주류문화가 불과 100년도 안 돼 국가와 자본에 의해 ‘박제화 된 전통’으로 전락한 오늘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지금 젊은 양조인과 전통명주 장인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는 각종 크래프트 주류의 개성과 고집이 빚어내는 독특하고 창조적인 주류 양조 과정에서 우리가 찾아가야 할 ‘소비하는 전통’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모범답안을 손수 쓰기 위해 팔도의 양조명인들과 국세청 주류면허 담당관, 대학의 미생물학과 교수에 이르기까지 책에 필요한 양질의 술문화 현장을 찾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역저의 흔적은 안동소주(조옥화 명인)와 한산소곡주(우희열 명인), 문배주(이기춘 명인), 부산금정산성막걸리(유길청 명인), 삼해약주(권희자 명인), 삼해소주(김택상 명인), 진도 홍주(허화자 무형문화재), 감홍로(이기숙 명인), 향온주(이성자 향온주장) 등에 대한 다채로운 전통 술의 제조 과정 묘사다.

또 ‘봉제사 접빈객’ 즉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는 유교 질서 속에서의 술은 조선이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심축이었음을 얘기한다. 더불어 20세기 초중반 겪어야 했던 슬픈 역사는 우리 술의 왜곡으로도 연결된다. 저자는 전통술을 오늘에 되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최근의 크래프트 주류를 대중이 쉽고 익숙하게 소비하는 이른바 ‘소비하는 전통’에 답이 있음을 강조한다.

다음은 저자와 일문일답.
'응답하라 우리 술' 저자 김승호. 사진=박성기 제공 

△지금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막걸리, 소주의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셔서 우리의 전통술이 어떻게 일반인들에게 소비되고 유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요?

- 우리의 술은 주식으로 먹는 쌀로 빚은 막걸리와 약주가 중심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양곡관리법 등으로 우리 술은 왜곡되기 시작했는데, 이름이 바뀐 경우(청주→약주)도 있고 식량이 부족해서 쌀로 술을 빚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주곡을 이용하여 술을 빚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우리 술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술은 그 어떤 음식보다 로컬푸드여야 합니다. 그 지역의 쌀과 물과 누룩(발효제)로 빚어 그 지역에서 소비될 때 가장 맛있습니다. 독일에 ‘양조장 굴뚝이 보이는 곳에서 맥주를 마셔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내산 쌀로 빚은 전통방식의 술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시면 취하는 알코올이 아니라 우리 문화로 빚은 술이라는 관점에서 즐기듯 이 술들을 찾았으면 합니다. 술을 만드는 과정은 공학이지만, 술을 마시는 과정은 인문학이기 때문이죠. 술은 곧 문화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시면서 애주가들이나 소비자들이 우리 술을 어떻게 알고 즐기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강조해 말씀하시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다면 어떤 것들 입니까.

- 전통은 박물관 전시실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나와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때 가장 빛을 발합니다. 전통주와 관련한 아카데미나 강습이 전국적으로 개최됩니다. 가양주를 직접 빚으면, 우리 술에 대한 이해의 폭도 늘게 되어 있습니다. 박제 같은 문화가 아니라 거리에서 소비되는 문화로서 우리 술이 기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서 말했듯 술을 만드는 과정은 공학이지만, 술을 마시는 과정은 인문학입니다. 이 땅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식물로 빚은 술이 가장 우리 문화를 잘 표현하는 술일 것입니다.

△술의 탄생기원에서부터 곡물발효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미생물 발효과학, 곡물 정제과정, 술의 본질 등-를 망라해 다양한 이야기 꺼리를 제시하시는데요. 책을 집필하시면서 이런 전문정보들을 얻기까지 도움을 받으신 분들과 그분들로부터 받은 정보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술을 공부하면서 신화학과 고고학에 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포도주와 제의 등은 실제했던 사건들이 서사시로 옮겨진 것입니다. 술과 관련한 기록은 다양한 경전 등에도 실려 있습니다. 전설이나 신화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했던 사건들이 스토리로 엮어져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소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보는 아직 국내에 전문가가 많지 않습니다. 와인과 관련해선 그리스 신화 전공자들이 많지만, 우리 술에 관해선 이제 연구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화학과 고고학에 대한 정보는 주로 책에서 얻었습니다. 물론 발효과학에 대해선 전남대의 김진만 교수, 농진청의 강희윤 박사,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이대형 박사 등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발효와 관련한 이화학에 대한 정보를 주로 자문받았습니다.

△우리 전통의 좋은 막걸리와 소주가 국가로부터 ‘박제화 된 전통’에 머물러 있는데, 그보다는 ‘소비하는 전통’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술을 소비해야 하고, 양조업자나 술 만드는 사람은 어떤 점들을 더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술에 계급은 없습니다. 또 좋은 술과 나쁜 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은 ‘좋은 술과 더 좋은 술이 있다’입니다. 모든 술은 각각의 스토리텔링을 갖고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술 ‘막걸리와 소주’는 근대화 과정에서 억압을 받다가 상황이 바뀌어 급조되듯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니 찾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우리 술에 관한 관심이 늘게 되면 자연스럽게 거리에서 ‘소비되는 전통’이 되어 갈 것입니다. 술을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술보다는 소비자가 원하는 술을 만들어야겠죠. 다만 천편일률적으로 단맛 중심의 술을 만든다면 차별화가 되지 않고, 또 소비자들도 금방 싫증을 낼 것입니다. 이와 함께 좋은 술은 안전하게 관리된 술입니다. 주류는 안전문제를 꼭 생각해야 합니다. 생산은 물론 유통과정에서의 안전도 꼭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 술 막걸리는 전통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된 술이었는지요. 좋은 막걸리가 최근 크래프트 막걸리 붐을 타고 다양하게 전승, 소비되고 있는 현장을 다녀오신 분으로서 중요한 막걸리는 어떤 것들이고, 요즘 애주가들이 어떤 점 때문에 이런 막걸리에도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하는지요.

-우리 술은 김치와 집된장처럼 각각의 집에서 만들어졌고, 소비되었습니다. 이런 술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주세법과 주세령 발효 이후입니다. 그리고 양곡관리법에 의해 쌀로 술을 빚지 못하다가 1995년 가양주와 누룩의 사적 제조가 가능해졌습니다.

즉 고작 27년 정도의 역사 속에서 예전 가양주 전통의 술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1~2년 사이 젊은 MZ세대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좋은 우리 술이 늘고 있는 것이구요.

중요한 막걸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우리 술을 고르면 된다고 봅니다. 요즘은 전통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판매점이 늘고 있으니 예전보다 쉽게 자신에게 맞는 술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관심의 증가에는 소득증가에 따른 소비 여력의 증가와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 등이 같이 작용한 듯합니다. 고된 사회생활을 버텨내 준 자신에 대해 좋은 술을 선물해준다는 식의 보상심리인 거죠.

△예로부터 소주는 왕가와 일부 특권층 사대부들 등 소수만이 즐기던 권력의 상징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소주의 어떤 점이 특별히 왕가나 사대부 권력층에서 향용하게 된 요인이었는지요. 이러한 왕가의 술이 일반인들에게도 전수되게 된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겁니까.

- 한마디로 말하면 경제력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내린 소주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막걸리 3병에 좋은 청주 한병, 그리고 청주 3병에 좋은 소주 한병 정도가 나옵니다. 따라서 가난한 농부가 소주를 즐길 수 없는 것이죠.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밥으로 지을 쌀이 없는데 소주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왕가와 귀족들의 술이 일반에게 소개된 시장은 숙종과 영정조 시대 이후입니다. 상업의 발전이 한몫하게 되었는데, 당시 해외에서의 은의 유입이 급증했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상민 중에서도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왕가의 술이 일반에 전파되는 경우는 상궁으로 있다 궁을 벗어난 경우, 공주나 옹주처럼 왕가의 사람이 반가의 사람과 결혼한 경우, 그리고 왕가의 사람이 먼 지방으로 유배를 떠난 경우입니다. 자연스럽게 평소 먹고 마시던, 아니면 만들던 술을 반가의 사람 혹은 지역의 유지들과 나누게 되었을 것입니다.

△막걸리와 소주는 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좋은 전통과 맛, 호칭 등에서 심한 왜곡과정을 거치게 되는데요.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의 주류정책 때문에 우리의 전통술이 왜곡되는 사례는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일제가 우리 술과 일본주를 구분하면서 우리 술에는 입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 술에 누룩만 사용하게 했다는 왜 문제였느냐. 이것은 일제가 우리를 바라본 시각에 있습니다. 일본주는 입국을 사용할 수 있게 해서 더 좋은 술을 만들게 하고, 심지어 안정적으로 양조를 할 수 있으니 경제성까지 갖게 됩니다. 하지만 누룩은 안정적인 발효가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전통의 발효제였지만, 입국처럼 해당 곰팡이만 모아둔 발효제와 발효력에서 큰 차이를 보였던 것입니다. 일제가 이런 정책을 편 것은 우리 양조산업을 고사시켜 일본주만 이 땅에 살아남게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해방 이후로도 우리 막걸리와 소주는 시대의 변화와 상황에 따라 꽤 부침이 심한 술들로 변모하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술이 동시대를 호흡했던 서민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시는지요.

- 불과 20~30년 전까지 우리는 경제적으로 풍요롭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근대화 과정의 상당부분은 ‘저곡가 저임금’ 정책이 한축을 담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제대로 수익을 올리지 못했고, 도시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충분한 소득을 올리지 못했지요. 당연히 수입산 농산물로 값싸게 만든 막걸리와 소주는 농민과 도시 서민들의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노동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가장 값싼 친구였던 것이죠. 이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은 술, 비싼 술을 소비할 수 없잖습니까. 이 때 이술 들은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이 책에 담고자 했던 중심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특별히 우리 술을 애용하시고 사랑하시는 애주가분이나 우리 술의 다양한 면모를 알고 싶어 하시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해 보시라고 말씀해 주시고 싶으신지요.

- 이 책은 우리 술에 대한 인문학적 안내서입니다. 불편한 역사라고 해서 부정할 필요가 없듯이 우리 술의 흑역사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거쳤으니 더 사랑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우리 술의 흔적들은 되도록 문학작품과 연결지으려 했습니다. 술자리에서 우리 술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문학을 같이 즐길 수 있다면 더 근사한 술자리가 되지 않을까요. 짧막한 시가 되었든, 영화가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술을 마시면서 그 술과 관련한 스토리를 같이 소비한다면 우리 인문학의 지평도 같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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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a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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