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 보다 뜨거웠던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이었다.
32개국이 참여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이, 25일 브라질과 세르비아의 경기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최초의 중동 월드컵이자, 최초의 겨울 월드컵으로 눈길을 끈 이번 월드컵은 경기장 안에서도 수많은 이슈 거리를 남겼다. 25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조별리그 2차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1차전에서 나온 주요 이슈들을 정리해봤다.
1㎜도 용납 못한다…미세한 오프사이드도 다 잡아내는 SAOT
이번 월드컵에는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SAOT)’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SAOT는 축구공에 심어진 관성측정기센서가 초당 500회씩 공의 위치를 분석하며, 경기장 지붕 밑에 설치된 총 12대의 카메라가 선수들의 신체 부위 29곳을 추적해 오프사이드 여부를 AI가 판단하는 기술이다.
AI는 공과 카메라가 확인한 데이터를 종합하면 비디오판독(VAR) 조정실에 알린다. VAR 담당 심판이 오프사이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이를 경기장에 있는 주심에게 알리고 최종 판단을 내린다. ‘반자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AI가 판독 결과를 심판에 전달하면, 심판이 최종 결정하기 때문.
SAOT의 존재감은 이번 월드컵에서 빠르게 나타났다.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개막전에서 전반 3분 에네르 발렌시아가 헤딩으로 골망을 갈랐지만, 판정이 뒤집혔다. 전광판에 뜬 3차원 그래픽은 프리킥 순간 에콰도르 공격수의 왼발이 카타르 최후방 수비수보다 골문에 가깝게 놓여 있던 장면을 그대로 구현해 보여줬다. 심판들이 잡아내지 못한 오프사이드를 SAOT가 포착했다.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는 SAOT에 발목이 잡혔다. 지난 23일 사우디아라비아와 1차전에서 SAOT 때문에 4골 중 3골이 취소됐다. 특히 전반 26분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의 어깨 봉제선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수 오른발보다 미세하게 앞으로 나온 것을 SAOT가 잡아냈다. 이 골이 인정됐다면 아르헨티나는 2대 0으로 앞서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3골을 놓친 아르헨티나는 후반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습에 연달아 실점을 허용, 1대 2로 역전패를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길어진 추가시간…“노래방 추가시간?”
이번 월드컵에서는 유독 추가시간이 길게 주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B조 잉글랜드와 이란전에선 무려 27분 16초의 추가 시간이 나왔다. 이는 1966년 잉글랜드 대회 이래 가장 긴 추가 시간 기록으로, 전반전에 이란 골키퍼 알레리자 베이반란드가 공을 처리하다 동료 선수와 충돌하며 쓰러져 치료받느라 14분 8초가 더해졌고, 5골이 터지면서 발생한 세리머니로 인해 13분 8초 동안 추가로 경기가 이어졌다.
FIFA는 이번 대회에서 경기 시간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경기 도중 중단된 시간을 모두 반영해 철저하게 추가시간으로 보상하고 있다.
국제적인 명심판이었던 페이룰루이지 콜리나 FIFA 심판위원장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추가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다. 전반에 3골을 넣었다면 세리머니와 재시작으로 5분을 넘게 잃게 된다”라면서 “러시아부터 우리는 경기 중 잃어버린 시간을 더 정확하게 따지려 노력했고 이번 대회에는 더 따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승우 SBS 해설위원은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전 해설 도중 추가시간이 8분 주어지자 “노래방 서비스 수준으로 많이 준다”고 말해 시청자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아시아의 약진, 아프리카의 부진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대륙은 단연 아시아다.
개최국 카타르가 개막전에서 에콰도르에 0대 2로 패하고, 이란이 잉글랜드에 2대 6으로 완패할 때만 해도 아시아는 월드컵 무대에서 망신을 당하는 듯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2대 1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더니, 일본마저 독일에 2대 1 역전승을 거두는 파란을 일으켰다. 아시아 팀 가운데 가장 늦게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 한국도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 90분 동안 대등한 경기를 펼친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출발을 했다.
반면 아프리카는 출전한 5개국이 모두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체면을 구겼다.
세네갈은 네덜란드에 0대 2로, 카메룬은 스위스에 0대 1로 패배를 당했다. 튀니지는 덴마크와, 모로코는 크로아티아와 0대 0 무승부를 거뒀다. 4개 국가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전체적인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는데 마지막 골 결정력에서 아쉬움이 컸다.
한국과 같은 H조의 가나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2골을 넣어 아프리카 팀 중 유일하게 골 맛을 봤지만, 2대 3으로 패배했다. 아프리카는 조별리그 2차전에서 첫 승을 노리게 됐다.
이밖에도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들은 엇갈린 성적표를 받았다.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는 주축들의 잇단 부상 악재 속에서도 호주를 4대 1로 완파하며 우승 후보임을 입증했다. 20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브라질은 세르비아를 상대로 2대 0으로 승리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잉글랜드(6골)와 스페인(7골)도 대량 득점을 올리면서 승리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반면 아르헨티나와 독일은 이변의 희생양이 되면서 16강 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대량 득점의 연속…경기당 평균 득점은?
이번 대회서 치러진 1차전 16경기에서 나온 평균 득점은 2.56골(전체 41골)이었다. 이는 2018 러시아 월드컵(2.64골)과 2014 브라질 월드컵(2.67골)에 비해 조금 하락한 수치다.
총 8골이 터진 잉글랜드와 이란(6대 2)의 맞대결이나, 코스타리카전에서 7골을 기록한 스페인도 있었지만, 무득점 무승부가 4경기나 되는 탓에 평균 득점이 다소 감소했다. 4년 전인 2018 러시아 대회에서는 조별리그 1차전 때 0대 0 무승부가 딱 한 번 나왔다.
득점 공동 선두는 총 6명으로, 에네르 발렌시아(에콰도르), 부카요 사카(잉글랜드), 메흐디 타레미(이란), 올리비에 지루(프랑스), 페란 토레스(스페인), 히샬리송(브라질) 등이 2골씩 기록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