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건강지킴이 ‘보건진료소’가 흔들린다

농어촌 건강지킴이 ‘보건진료소’가 흔들린다

의료취약지역 주민 1차진료·건강교육부터 민원 해결까지 담당
코로나19 영향으로 업무 멈춘 곳 다수…136곳은 전담인력도 없어

기사승인 2022-12-09 09:00:05
쿠키뉴스 자료사진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의 건강 지킴이 ‘보건진료소’ 일부가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의료공백을 메우고자 만들어졌지만 진료를 보는 전문 인력이 부족해 기능이 축소된 상황이다.

보건진료소, 건강 돌봄은 필수…일상생활 해결사까지 자처 

인근 병원까지 차를 타고 한 시간은 족히 나가야 하는 시골 마을. 이곳에 주민들을 돌보는 보건진료소가 있다. 해당 기관에는 간호사·조산사 자격을 가진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상주한다.

변선희 원림보건진료소 소장(보건진료소장회 회장)은 벌써 30년째 지역 의료공백을 위해 근무하고 있다. 이른 아침 진료·약처방 현황에 대한 전산 작업이 끝나면 환자 진료를 보거나 요일별로 오후 건강클리닉을 열어 치매·고혈압·당뇨 교육을 진행한다. 또 직접 방문해 아픈 어르신들의 상태를 확인하면서도 틈틈이 찾아오는 주민들의 민원도 해결한다. 

변 소장은 “보건진료소의 가장 큰 역할은 의료취약지역 주민의 건강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이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 특성상 노령인구가 많다보니 TV, 휴대폰 고쳐주거나 비 오는 날 빨래 치워주기, 장보기, 고지서 읽어주기 등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역할과 고충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30여년 동안 보건진료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경운기 사고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지혈하면서 병원으로 이송해 살린 일, 기도에 음식물이 막혀 호흡 정지된 환자를 하임리히법으로 살려서 명의로 소문났던 일도 있었다. 또 가정 분만으로 태어난 아기가 커서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거나 화병 환자를 지속적으로 상담해 자살을 막은 일도 있었으며 다문화가족 갈등 중재, 부부나 고부갈등 중재까지도 해결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보건진료소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보건진료소장들도 예외 없이 코로나 업무에 차출돼 역학조사, 선별진료소, 생활치료센터, 예방접종 등의 업무에 투입됐고 지자체 상황에 따라 보건진료소 업무를 중단한 곳도 다수 발생했다. 

변 소장은 “보건진료소 업무가 중단된 곳은 민원이 폭주했다. 코로나 기간 보건진료소 이용 주민의 보건의료서비스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거동도 불편하고 코로나에 감염될까봐 무서워서 못가고 그냥 집에서 참았다’는 대답이 있어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진료소는 혼자서 모든 업무를 책임져야 하는 1인 근무체제 기관이다. 그러다 보니 업무공백에 따른 부담감이 상당히 크다. 주민들의 불편을 생각해 연가나 병가를 쓰는 것도 쉽지 않다. 책임에 대한 무게도 무겁다”며 “힘들고 외로운 직업이라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주민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버텨왔다”고 말했다. 

전문 인력 없어 유명무실한 136곳…정부는 “지자체 담당” 떠넘기기만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에게 있어 보건진료소는 가장 필요한 보건기관이지만 갈수록 이를 운영하기 위한 실질적 인력과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전국 16개 시·도 총 1904개의 보건진료소 중 136곳은 전담공무원 인력이 공백인 상태다. 쿠키뉴스 취재 결과, 전담인력이 없는 보건진료소 경우 지자체 상황에 따라 여러 보건진료소를 한 명의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순회 진료하거나,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아닌 일반 직원을 배치해 진료를 제외한 업무를 보고 있다. 혹은 아예 운영을 일시 중단한 경우도 있다.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15조(보건진료소의 설치‧운영) 제2항에 따라 보건진료소에는 보건진료소장(보건진료 전담공무원) 1명과 필요한 직원을 두도록 하고 있다. 보건진료직렬의 정원이 엄연히 법으로 규정돼 있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백인 자리에 충원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내년 새로 배치될 보건진료 전담인력 교육생도 126명에 그쳤다.

운영 부실로 인한 지역의료 공백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더 심화됐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3년간 코로나19로 일부 보건진료소 전담인력이 선별진료소 투입되거나 보건진료소 운영이 중단된 곳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보건진료소 운영 현황 데이터는 2019년에 머물러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건진료소 설치 운영 현황은 매년 지역보건법 제27조(보고 등)에 따라 지역보건의료기관 설치‧운영현황보고를 통해 확인된다. 즉, 지자체별로 운영 및 인력 현황을 직접 보고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2020년부터 지자체가 코로나19 대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보건진료소에 대한 보고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매년 지자체별로 보건진료소 운영 현황을 보고 받아 상황을 파악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2년간 데이터를 수집하지 못했다. 올해는 보고를 받을 계획”이라며 “복지부는 보건진료소에 보건진료 전담인력을 근무하게끔 하는 법적 토대를 마련한 것 일뿐 보건진료소를 운영하는 것은 지차제 역할이다. 지자체별로 상황에 따라 운영 상황을 결정한다. 따라서 보건진료소 인력 공백이나 운영 중지 등을 일일이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무관심에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인력·예산 지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현장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대우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보건진료소 관계자는 “주민들이 보건진료소를 가장 신뢰하고 좋아하는 이유도 그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건강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보건소는 보건진료소에 대한 업무 이해도가 낮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관심조차도 없다”며 “일차보건의료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보건 관계자들조차도 보건의료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 보건진료소 업무 공백에 대해서는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해도 예산이나 인력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 또 열심히 하고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 등이 계속되면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들의 사기가 낮아지고 있다”며 “보건소 내에 보건진료소 업무를 총괄할 수 있는 팀이 신설돼야 하고 승진이나 포상에서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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