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둔치 등 거리에서 노래하다가 2만여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심정은 어떨까. 1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 무대에 오른 가수 임영웅은 가슴 벅찬 듯한 눈빛이었다. “서울, 한목소리로 소리 질러!” 그가 이렇게 외치자 공연장을 채운 하늘색 물결이 요동쳤다. 임영웅의 ‘아임 히어로’(IM HERO) 앙코르 콘서트에 다녀왔다.
지난 5~8월 연 전국투어를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앞서 서울 공연을 열었던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보다 규모를 키웠다. 그런데도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한다. 지난 10월 콘서트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모든 티켓이 팔려나갔고, 중고시장에선 10만 원대 티켓이 수십만 원에 되팔렸다. 오죽하면 팬들 사이에서 “호남평야에서 공연해 달라”는 요청이 나왔을 정도다.
이날 임영웅 콘서트를 직관하니, 18만 영웅시대(임영웅 팬클럽)가 임영웅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3시간 내내 음정엔 흔들림 한번 없었다. 그가 ‘부캐’ 임영광을 능청스레 연기할 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엇보다 진정성이 돋보였다. 2020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인생 역전한 그는 “여러분이 주신 사랑을 평생 생각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앙코르 콘서트지만 완전히 새로운 공연”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지난 전국투어 콘서트와 다른 노래를 선곡하고, 편곡에도 변화를 줬다. 시작부터 그랬다. 앞선 공연이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막을 열었다면, 앙코르 콘서트는 신곡 ‘런던 보이’(LONDON BOY)로 시작해 한층 산뜻했다. 지난 공연에선 들을 수 없었던 히트곡 ‘우리들의 블루스’와 지난달 내놓은 신곡 ‘폴라로이드’(Polaroid), 성탄 캐럴 메들리 등도 추가됐다.
임영웅은 트로트는 물론 발라드, 록, 포크, 심지어 EDM과 K팝 댄스까지 소화했다. 구성지게 “딱 한 잔만 짠하고 갑시다”(노래 ‘따라따라’)라며 입으로 물을 뿜다가도, 순식간에 감정을 잡고 애절한 발라드를 불러 관객 눈시울을 자극했다. 임영웅이 그룹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 춤을 따라 출 때나 국악과 힙합, 전자 음악을 섞은 ‘아 비앤토’(A bientot)를 부를 땐 공연장 열기가 정점을 찍었다.
그룹 방탄소년단, NCT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이 공연을 열어 ‘K팝 성지’로도 불리는 고척스카이돔은 이날 모든 세대가 하나 되는 축제의 장이 됐다. 팬심 앞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은발의 영웅시대는 ‘웅랑해’(임영웅 사랑해), ‘웨이브웅’ 등 신조어로 플래카드를 꾸며 왔다. 임영웅은 “8세 어린이부터 100세 어르신까지 모든 연령대가 모인 신기한 공연장”이라며 “지금만큼 자부심 느끼는 순간이 또 없다”고 했다. 관객들은 “임영웅! 임영웅!” 외치며 즐거워했다.
이날 공연장에 모인 관객은 약 1만8000명. 11일 공연까지 더하면 3만6000여명이 임영웅 서울 앙코르 콘서트에 모인다. “지금은 40명 앞에서 노래하지만 10년 후엔 4만명 앞에서 노래하겠다”던 데뷔 초 꿈에 절반 가까이 다가간 셈이다. 그는 내년 2월 미국에서 공연을 연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2월11일과 12일 이틀간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임영웅은 “간절하게 꿈꾸면 언젠가 이뤄진다. (4만명 앞에서 공연하겠다는) 꿈을 놓지 않겠다”면서 “여러분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