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예방 정보 넘치는데 행정 칸막이에 막혔다"

"참사예방 정보 넘치는데 행정 칸막이에 막혔다"

임성은 서울기술연구원 원장 인터뷰

기사승인 2022-12-14 15:33:21
임성은 서울기술연구원 원장.   사진=박효상 기자

핼로윈데이 저녁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내리는 인원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 비가 쏟아져도 반지하 집 하수구가 넘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한밤에 택시를 더 쉽게 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곳이 있다.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기술연구원이다. 서울기술연구원이 내놓는 현안 보고서가 요즘 공무원들 사이에서 화제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모니터링을 제안하고, 수해 피해를 줄일 8가지 아이디어를 내놓고, 우회전 통행방법 변경에 따른 교차로 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올해 4월 임성은 원장이 취임한 이후 일어난 변화다. 지난 9일 서울 상암동 서울기술연구원에서 임 원장을 만났다. 거대 도시의 위험과 피로를 체감하는 요즘,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우리의 삶을 어디까지 개선할 수 있을지 물었다.

Q. 이태원 참사로 모두 마음이 무겁다. 이태원역에 사람이 급증하는 정보를 경찰이나 구청이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없었을까.

“기술적으로만 말하면 지금도 200% 가능하다. 서울의 주요 지하철역에서 승하차 인원을 실시간으로 집계하고, 급격한 변화가 있을 때 관련 기관에 자동으로 통보하는 시스템에 필요한 기술은 다 있다. 지하철 승하차 데이터는 개인이 특정되지 않기 때문에 정보보호 대상도 아니다. 막연하게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시민의 인식과 행정의 관행 때문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제안을 먼저 하지 못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서울시와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Q. 카카오톡을 마비시킨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도 기술적으로 막을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스프링클러 점검 개선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지금은 천장에 달린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불이 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기계 장치가 연결돼 있는지만 점검하기 때문이다. 비상 발전기보다 더 손쉬운 보조배터리 형태의 연료전지로 정전에 대비할 수 없는지도 검토해볼만하다.”

Q. 사건사고가 터지면 흔히 행정이나 시민 의식을 탓한다. 기술적인 해법을 찾는다면 의외로 더 빠르게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고의 가장 본질에 깔려 있는 문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공무원 조직 문화다. 이태원 참사도 전날부터 현장에서는 요청이 있었고 당일에도 신고가 이어졌다. 이 정보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여러 단계의 보고체계를 거치면서 누락되고 지체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을 가능성이 크다. 참사 직후에 실종자 접수도 112 119 110과 동주민센터나 재난안전상황실 등 여러 곳에서 이뤄졌는데 연계가 안돼 가족들이 헤맸다. 공유 시스템만 있었다면 불필요한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 굉장히 아쉽다. 기술은 이미 관행과 행정 칸막이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경우 현장 보고자가 중요 사안이라고 판단하면 직급 상관 없이 모든 관계자에게 한번에 내용을 전달한다.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지면 좋겠다.”

임성은 서울기술연구원 원장. 사진=박효상 기자

Q. 서울기술연구원에서 이런 고민까지 하는 줄 몰랐다. 박사급 연구원들이 국책과제 같은 큰 제목 아래 오랫동안 공부하고 고민해서 수백쪽짜리 연구서를 내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다.

“리서치라는 말 자체가 다시(re) 찾아본다(search)는 의미다. 문제를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는거다. 박사급 연구원은 100쪽 짜리 연구에만 매달려야 한다는 규정이 어디에도 없다. 나도 처음 연구원들에게 신속한 대응을 요청했을 때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우리 박사님들이 너무도 빨리 또 상당 부분 솔루션이 될 수 있는 내용으로 보고서를 내놓더라. 굉장한 희망을 발견했다. 그 내용을 서울시의 담당 부서에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는데, 반응도 좋다. 중앙부처에서도 피드백이 온다.”

서울기술연구원의 한 직원은 “원장님 취임 이후 분위기가 확 변했다”고 귀띔했다. 연간 40건 안팎의 출판물 형태로 보고서를 내던 연구원이 올해는 100건 이상의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안과 관련된 사안이면 1,2주만에도 보고서를 내고, 당일에 대응하기도 한다”고 했다.

Q. 그래도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실제로 행정에 적용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성공 사례가 있나.

“기존에 연구 결과 중에 한강 다리의 CCTV를 인공지능으로 모니터링해 투신을 시도할 것 같은 사람이 발견되면 구조대에 알려주는 방식이 우리 연구원에서 제안한 내용이었다. 최근에는 갑자기 비가 많이 왔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강변 도로의 통제구간을 최소화하거나 반지하 거주시설의 창과 화장실 배수구에 방지 장치를 다는 방안 등을 제안해 현재 서울시와 실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Q. 서울기술연구원은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직면한 문제에 공학적인 솔루션을 찾는 역할을 하는 곳 같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처음으로 만든 과학기술 분야 응용 실증 연구기관이라는데, 행정을 연구해온 학자 출신으로서 공학 분야 연구자들과 변화를 추진하는게 쉽지 않겠다.

“신기술, 신산업에 대한 연구나 정책은 이미 몇 트럭 분이 쌓였다. 맹점은 상당 부분이 탁상 연구라는 점이다. 막혀 있는 혈을 뚫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역할을 기술연구원이 하길 바랬다. 기술연구원에는 인적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인 만큼 현장에서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으며 현장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현장과 함께 고민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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