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 시민합동분향소. 100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이종철 유가족 대표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7대 종단 이태원참사 합동추모식'이 열렸다.
정부 차원의 합동분향소는 지난달 철거됐다. 10·29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이에 반발하듯 지난 14일 참사장소로부터 약 400미터 떨어진 이태원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참여연대 등 진보성향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유족들을 도왔다. 합동추모식은 참사 희생자들의 49재에 발맞춰서 열렸다.
이날 아침 서울 최저기온은 영하 11도까지 떨어졌다. 오후 들어 추위가 수그러들었다지만 그래도 영하 4도. 삼각지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셌다. 체감온도는 아침 나절과 다를 바 없었다.
강추위 속에서 추모식은 시작됐다. 검정색 점퍼를 차려입은 이종철 대표를 비롯한 유가족 8명이 단상 앞 두 번째 열 의자에 앉았다. 불교⋅원불교⋅유교⋅천도교⋅천주교⋅민족종교⋅개신교 등 7대 종단 대표와 관계자들이 앞뒤로 자리했다. 승복이나 사제복을 입은 탓에 유족들과 구분됐다.
묵념과 분향, 그리고 헌화가 이어졌다. 각 종단 대표들은 추도사를 통해 유가족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의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했다.
민족종교 측에서 추모예식을 거행할 때 제상은 여느 제상과 달랐다. 과일과 포 외에 3종류의 캔커피가 올랐다. 모두 젊은 연예인이 나와 선전하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캔커피였다. 20인분은 되어 보이는 충무김밥도 제상에 올랐다. 비닐 포장을 뜯자 김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바람이 불어 제상의 향불 연기와 뒤섞였다.
이종철 대표는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입을 굳게 닫은 채 하늘을 바라봤다. 왼쪽에 자리한 유족은 바닥을 내내 쳐다봤다. 마스크 너머 유족들의 눈동자는 모두 붉게 충혈돼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온 고령의 유가족은 추모식이 끝난 뒤 용산구청 쪽으로 난 내리막길을 걷다가 3번이나 비틀거렸다.
서모씨(74)는 10평 남짓한 분향소 안에 놓인 75명의 영정 중에서 아들 형주 씨의 영정을 금방 찾았다.
형주 씨의 영정을 쓰다듬다가 휴대전화에 자식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 영상기자들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울먹이느라 "내 아들"을 제외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영상기자 중 일부는 그런 서 씨를 정면으로 찍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전북 김제에서 운수업을 하고 있다는 서 씨는 피붙이의 죽음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단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8년 늦둥이로 태어난 형주 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어머니 일을 도왔다고 했다.
서 씨는 함께 온 가족들에 이끌려 이태원역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기자에게 말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하다못해 (사고가 나서)그리 길이 막히는데 (경찰이나 소방이 빨리)차를 빼라고 해야지 무엇을 했나요."
그는 "경찰 배치가 배치되어도 어쩔 수 없는 사고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참사 당시 해명발언을 짚었다.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도 말했다.
서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면서 "장관, 경찰청장, 구청장 모두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해 씨(64.여)는 분향을 마친 뒤 현수막 아래에서 5분 남짓 혼자 울었다. 이번 참사 희생자 유가족은 아니었다. 그는 1년 전 희소병으로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아들이 살아있으면 올해 38세.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싶어 추모식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대처에 불만이 많았다. "책임 있는 사과가 먼저"라며 "선거 똑바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희 씨(50.여)는 출근길에 짬을 내어 분향했단다. 관악구에 있는 집에서 아들과 참사 당일 TV 생중계로 젊은이들의 죽음을 지켜봤다. 심폐소생술 하는 장면을 보며 처음에는 "이게 영화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사망 158명, 부상 197명의 결과를 받아들고서는 "이게 대한민국인가"라고 자신도 모르게 화를 냈다고 전했다.
영정 없는 서울광장 분향소는 찾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유족 서 씨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책임감 있는 사과부터 해야 한다"라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기도 하지만 유가족을 생각하면 그래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사망자들의 죽음을 조롱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2000년생 아이 키우는 처지에서 아이들이 (이태원에)놀러가는 것을 못 막았느냐는 소리는 기가 막힌다"라며 "아이들은 어디든 놀러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아이가 거기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달라"며 "이상한 댓글을 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김 씨는 여야 정치권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분노한다. 정치권은 답답하다. 유족들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말했다.
오후 3시 30분께 합동추모식은 마무리됐다. 추모식에 참석한 이들이 물러나도 분향소를 찾는 시민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졌다. 분향소 영정은 모두 158개. 이 중 75명만 얼굴과 나이가 추모객들에게 공개됐다. 유족들이 피붙이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말 못 할 사연도 그만큼 많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이날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의 발걸음은 유독 한 영정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고(故) 신한철씨의 아버지가 영정에 담은 문구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아들아 아빠는 네가 너무나 소중한 아들이었어. 미안해 미안해 너무지켜주지못해 미안해 아빠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빠는너무행복했고 고마워다. 언제든연락해 기다릴게 우리아들아 보고싶다 사랑하는 아빠가."
손대선 기자 sds110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