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들은 귀 삽니다, 혼자 듣기 아까운 노래 [굿바이 2022]

안 들은 귀 삽니다, 혼자 듣기 아까운 노래 [굿바이 2022]

기사승인 2022-12-31 06:00:25
한 해가 또 쏜살같이 지나갔다. 올해 K팝은 역대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고 월드투어 아티스트를 배출하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세계인이 K팝을 즐겨 듣는 시기에도 나만 알기 아까운 노래는 존재하는 법. 타이틀곡이 독차지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수록곡을 쿠키뉴스가 돌아봤다. 안 들은 귀 삽니다. 내 ‘플리’(플레이리스트) 속 숨은 명곡들.

이찬혁 ‘에러’ 티저 이미지. YG엔터테인먼트

이찬혁 ‘어 데이’(A DAY)

지상에 머무를 시간이 단 하루뿐이라면. 생애 마지막 날을 가정한 ‘어 데이’에서 가수 이찬혁은 거침없이 솔직하다. 간결한 트랙 위로 어린 날의 치기와 멋쩍은 회한, 새어 나오는 그리움을 얹어 장엄한 레퀴엠 ‘장례희망’으로 넘어갈 채비를 한다. 삶의 끄트머리에 선 이가 털어놓는 소회와 1980·90년대를 향한 애정이 엿보이는 멜로디는 은근하게 마음을 저민다. ‘어 데이’가 실린 ‘에러’는 이찬혁이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과 작별하기까지 과정을 상상해 담은 작가주의적 음반이다. 온라인에선 타이틀곡 ‘파노라마’를 부르면서 선보인 독특한 퍼포먼스가 화제였고, 언론은 가수의 사생활을 더 주목했다. 그러나 그저 소란 속에만 묻어 두기엔 ‘에러’에 담긴 철학과 시도가 눈부시다. 청년 예술가의 환골탈태가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하는 노래.

레드벨벳 ‘더 리브 페스티벌 2022 – 벌스데이’ 티저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레드벨벳 ‘바이 바이’(BYE BYE)

그룹 레드벨벳 음악의 온도는 몇 ℃일까. ‘빨간 맛’에서 단숨에 뜨거워졌다가 ‘피카부’에선 돌연 서늘해지고, 어느 순간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처럼 천연덕스레 해사해지는 레드벨벳은 쉽게 종잡을 수 없는 팀이다. 지난달 발매한 ‘더 리브 페스티벌 2022 – 버스데이’(The ReVe Festival 2022 – Birthday)는 이런 예측 불가함으로 채운 음반이다. 타이틀곡 ‘버스데이’가 발랄하고 기묘한 세계로 청자를 이끌면, 뒤이은 ‘바이 바이’는 냉소 어린 경고로 청자를 붙든다. 어둡다고 말하기엔 흥겹고, 즐겁다고 표현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신비롭다. 슬기를 필두로 다섯 멤버의 목소리가 각자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조화롭게 섞인다. 불균질한 톤으로 상상을 비껴가며 레드벨벳은 ‘레드벨벳스러움’을 완성한다.

우즈 ‘컬러풀 트라우마’ 티저 이미지. 위에화엔터테인먼트

우즈 ‘하이잭’(HIJACK)

가수 윤하가 가장 기대되는 신예로 뽑고 아이유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가 품에 안은 가수. Mnet ‘쇼미더머니5’와 ‘프로듀스X101’, 그룹 유니크와 엑스원을 지나 비로소 홀로 선 가수. 우즈는 자신이 거쳐온 길 만큼이나 다채로운 음악색을 펼쳐낸다. 그가 지난 5월 내놓은 미니음반 ‘컬러풀 트라우마’(COLORFUL TRAUMA)는 록과 힙합, 팝을 섞어 만든 강렬한 치유서다. 두 번째 수록곡 ‘하이잭’(HIJACK)은 우즈의 다양한 장기와 복잡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전투적인 기타 소리와 그 사이를 헤집고 등장하는 힙합 비트가 신선하다. 귀에 금세 감기는 후렴구와 퍼포먼스에 적합한 강력함을 더해 K팝의 미덕까지 갖췄다. 온갖 장르를 언어 삼아 뾰족하게 자의식을 드러내는 가수. 우즈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

스트레이 키즈 ‘거미줄’(VENOM) 뮤직비디오 캡처

스트레이 키즈 ‘거미줄’(VENOM)

스트레이 키즈는 이상함과 신선함 사이를 긴밀히 오가는 그룹이다. 이들의 색깔은 분명 독특하다. 낯설지만 겉돌지 않고, 예상 못하게 스며든다. 스트레이 키즈 음악의 정체성은 지난 4월 발표한 음반 제목 ‘오디너리’(ODDINARY)에 담겨 있다. ‘오디너리’는 영단어 ‘이상한’(ODD)과 ‘평범한’(ORDINARY)을 결합한 단어다. 평범한 우리도 모두 이상한 면을 가졌으며 비정상이 곧 정상이라는 의미다. 보편성을 부정하는 이 앨범의 포문을 여는 곡이 ‘거미줄’이다. 날 선 소리들이 곡을 촘촘히 구성하는 가운데, 칼날을 벼리는 효과음과 같이 재미난 요소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다. 따로 놓고 볼 땐 모난 사운드가 합쳐지자 중독성 강한 음악으로 완성된다. 독특해서 더 궁금해지는 이 곡은 스트레이 키즈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통로다.

원필 ‘필모그래피’ 티저 이미지. JYP엔터테인먼트

원필 ‘외딴섬의 외톨이’

사방이 끝없는 바다인 섬에 남겨진 외톨이의 마음은 어떨까. 고독한 공간을 설정하며 시작하는 이 노래는 금세 반전을 맞는다. 어둠을 뚫고 기꺼이 외톨이의 손을 잡아준 ‘그대’가 기적처럼 나타나서다. 기댈 수 있는 이를 만나자 벗어나고 싶던 쓸쓸한 섬은 탐험하고 싶은 공간으로 변모한다. 원필의 이름을 딴 솔로 음반 ‘필모그래피’(Pilmography)는 이별 후 새 희망을 만나 행운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10개 트랙에 걸쳐 이야기한다. ‘외딴섬의 외톨이’는 ‘안녕, 잘 가’로 시작해 ‘행운을 빌어 줘’로 마무리 짓는 이 음반의 정중앙에서 가장 극적인 희망을 노래하는 곡이다. 외톨이가 외로움을 딛고 ‘더는 이 섬에 나 혼자만은 아니’라고 선언하는 과정은 원필의 따스한 목소리와 만나 울림을 준다. 위로와 희망을 얻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노래.

비비지 ‘빔 오브 프리즘’ 티저 이미지. 빅플래닛메이드

비비지 ‘거울아’

차갑고 무섭기만 한 세상. 자신감을 잃은 화자는 거울 속에 갇힌 또 다른 자신을 찾으려 한다. 노래는 오케스트라 편곡과 함께 서정적이면서도 아련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비비지의 데뷔 음반 ‘빔 오브 프리즘’(Beam Of Prism) 마지막 트랙인 ‘거울아’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여자친구스럽게’ 담은 곡이다. 갑작스러운 여자친구의 해체 이후 은하와 신비, 엄지는 비비지로 새 출발을 선언했다. 서정적인 청순함을 내세우던 여자친구와 달리 펑키하고 트렌디한 팝 음악을 택한 비비지. 새로움 속 익숙한 연결고리는 반갑고 뭉클하다. 비비지는 프리즘으로 다양한 색을 비추듯 여러 장르를 시도한다. 이들의 음악 세계는 현재진행형으로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놓인 ‘거울아’는 비비지의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한다.

이은호 김예슬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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