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게 떠날래요” 150만명 넘게 서명한 ‘이것’

“품위 있게 떠날래요” 150만명 넘게 서명한 ‘이것’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누적 150만명
“콧줄 꽂기 싫다” 지인들과 함께 등록기관 찾기도
20대~100세까지…연령대도 다양

기사승인 2022-12-31 06:30:02
지난 29일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서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 중 하나인 서울 강서구 보건소를 찾았다.   사진=정진용 기자

연명 의료를 받는 대신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사람이 150만명을 넘었다.

30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153만8415명으로 집계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사람이 사전에 연명 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밝혀두는 문서다. 연명 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착용·혈액투석·항암제 투여·체외생명유지술·수혈·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의학적 시술로,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을 연장시켜주는 행위다.

여기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고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의학적 판단을 받은 사람이다. 

등록 현황을 보면 성별로는 여성이 더 많다. 여성 105만6518명, 남성 48만1897명이다. 연령대를 보면 70~79세가 66만1261명으로 가장 많다. △80세 이상 (28만6024명) △65~69세 (24만3297명) △60~64세 (15만6249명) △50~59세 (13만7277명) △40~49세 (41만232명) △30~39세 (8894명) △30세 미만(4181명)이 그 뒤를 이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등록 추계.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신분증 들고 등록기관 방문…생각 바뀌면 언제든 취소 가능

직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해보기로 했다. 과정은 간단하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 본인이 직접 방문해 설명을 듣고 의향서를 작성하면 된다. 준비물은 신분증이 전부다.

29일 오전 10시 서울 강서구보건소를 방문했다. 강서구보건소는 전국에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 602개 중 하나다. 대형병원, 건강보험공단, 노인복지관, 보건소 등이 등록기관에 포함된다. 등록기관마다 상담실 운영 기준이 달라 미리 전화한 뒤 가능한 시간대에 방문하는 게 좋다. 강서구보건소의 경우  1층에 상담실이 따로 마련돼있다. 상담사로부터 약 20분간 연명의료 시행방법, 호스피스 선택 및 이용,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효력 및 효력 상실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의향서를 작성했다.

의향서가 국립연명의료 관리기관 시스템에 등록되면 그때부터 법적 효력이 생긴다. 같은 날 오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시스템에 등록되었습니다’는 문자를 받았다. 등록증을 따로 발급 받고 싶다면 신청하면 된다. 30일 이내 우편으로 받을 수 있다.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나 걱정할 필요 없다. 언제든지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다시 등록기관에 신분증을 들고 방문하거나, 온라인으로도 간편하게 할 수 있다.

1대1로 설명을 들은 뒤 작성하게 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진=정진용 기자

21살 청년부터 100세 넘은 어르신까지

보건소를 찾는 이는 갓 이십대가 된 청년부터 100세 넘은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전날에만 13명이 상담소에서 의향서를 작성하고 돌아갔다. 추운 날씨에 방문자가 줄어든 게 이 정도다. 담당자에 따르면 고령층 10명에 9명은 상담실에 들어오자 마자 “콧줄 꽂기 싫다”고 말한다고 한다. 인공호흡기 착용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미 등록한 지인이 자랑삼아 얘기하는 걸 듣고 예약도 않고 무작정 문을 두드리는 어르신들도 많다. 최근에는 젊은층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 2001년생 청년은 “부모님에게는 아직 비밀”이라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뿐만 아니라 장기기증 신청까지 하고 돌아갔다. 

연명치료 대신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연명치료하는 가족·지인을 곁에서지켜봤다거나, 자녀에 심적·금전적인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들이 많다.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의 존엄한 마무리를 위한 결정인 경우도 있다.

같은날 강서구보건소에서 만난 이문규(81)씨는 아내와 아내 지인 총 3명을 데리고 와서 다함께 상담받고 의향서를 썼다. 이씨는 아내를, 이씨 아내는 친구 2명을 설득했다. 이씨는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은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 왔다”면서 “(임종 직전) 의식이 있을 지 없을 지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에 품위 있게 죽고 싶다. 억지로 연명치료 해서 하루 이틀 더 살아 뭐하겠나”라고 말했다. 

국가연명의료 관리기관 시스템에 등록됐다는 문자를 받으면, 그때부터 법적 효력이 생긴다. 등록증은 따로 신청하면 우편으로 한달 내 받을 수 있다.    

노인 89% “좋은 죽음은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

연명의료결정 제도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 및 절차를 마련,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취지로 지난 2018년 2월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도 말기 환자로 진단 받은 환자와 가족의 신체, 심리 사회, 영적 고통을 예방·경감 시켜준다는 취지에서 등록을 장려하고 있다. 고령화로 수요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 결과, 65세 이상 노인 89%가 좋은 죽음에 대해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등록기관 숫자가 부족하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지역 보건소의 경우 강서구, 은평구, 중구 3곳만 의향서 등록 기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노인층 접근이 타 기관보다 쉬운 노인복지관은 전체 13.8%만 등록기관으로 지정돼있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죽음, 자기결정권 강화를 위한 국회토론회’에 참석한 조정숙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 “전국 노인복지관과 보건소 모두를 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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