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병역비리’ 발칵… 의사들 “환자들 숨을까 걱정”

‘뇌전증 병역비리’ 발칵… 의사들 “환자들 숨을까 걱정”

檢, 뇌전증 위장해 병역면탈 도운 브로커 수사
뇌파·MRI 판별 어려운 빈틈 파고든 ‘병역비리’ 범죄
전문가들 “병역기준 강화하기보다 엄중 처벌해야”

기사승인 2023-01-03 06:00:08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병역을 고의로 피하기 위해 뇌전증으로 위장한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병역비리 사건으로 인해 뇌전증에 대한 편견이 강화돼 환자들이 숨을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의사도 속는다… 맹점 노린 ‘뇌전증 병역면탈’

2일 검찰과 병무청은 ‘병역 면탈 합동수사팀’을 꾸려 뇌전증 진단 수법으로 병역 기피를 도운 브로커에 대해 집중 수사하고 있다. 

직업군인 출신 50대 브로커 구모씨 등은 뇌전증 증상을 허위로 꾸며내는 방식의 병역면탈 방법을 알려주고 인당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병역비리 의심자는 고위 공직자 및 법조인 자녀, 프로스포츠 선수와 연예인 등을 비롯해 7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뇌전증’ 판별이 어렵다는 맹점을 파고들었다. 과거 간질로 불리던 뇌전증은 뇌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이상을 일으켜 과도한 흥분 상태를 유발해 의식을 잃게 하거나 발작 등의 증세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피로나 건강 이상 같이 발작을 유발할 만한 요인이 마땅히 없는 데도 발작이 일어날 때 뇌전증으로 진단한다. 

진단은 뇌파나 자기공명영상(MRI) 판독을 통해 내리지만, 실제 뇌전증 환자의 50%는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 게다가 환자별로 발작 증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환자의 임상 증상이나 병력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뇌전증협회 이사인 신동진 가천대길병원 교수는 “뇌파나 MRI 검사로 완벽하게 판별이 안 된다는 뇌전증의 맹점을 악용한 범죄”라며 “특별한 원인 없이 돌발적으로 발작이 일어나기 때문에 브로커가 마음먹고 속이려고 하면 의료진도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교수는 “발작 증상이 대개 3분을 넘기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 도착하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주로 환자의 진술이나 목격담을 근거로 진단한다”며 “진단검사로 판별이 어려운 병력 특성상 세계적으로 유명한 뇌전증 센터도 15% 이상의 오진율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뇌전증 환자 군 복무 위험… 꾀병이라는 인식 생겨선 안돼”

뇌전증에 대한 정확한 판별이 어렵다는 이유로 병역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뇌전증에 대한 군 복무 면제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병역 기피자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뇌전증 환자가 군 복무를 할 경우 생명이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신동진 교수는 “발작 증상이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옷 매무새를 만지작거리거나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는 발작 증상도 있다”면서 “가령 뇌전증 환자가 사격장에서 방아쇠에 손을 대고 있다가 발작 증상이 일어나면 총알이 발사될 수도 있다. 뇌전증은 군 복무 면제 질환임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사회적으로 부정적 낙인이 심한 질환인데 이번 사태로 인해 환자들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걱정”이라며 “오죽하면 어떤 환자들은 ‘차라리 동정이라도 받는 암이 낫다’할 정도인데 이를 악용하다니 개탄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신원철 교수 역시 “뇌전증 환자들이 군대에 가면 사고가 날 수 있다. 발작 증상이 나타나면 의식이 없어져 전신 마취를 한 것처럼 팔이 잘려도 통증을 못 느끼는 정도”라며 “기준을 강화해 환자가 입대해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병을 숨기고 군 입대해 사고가 난 경우도 있었다. 그는 “제 환자 중에 군대를 가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병을 숨기고 입대한 분이 있다. 군대에서 약을 복용하지 않다가 사고가 나서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뇌전증이 병역비리의 대표적 질환이 될까봐 우려된다. 뇌전증이 꾀병이라는 인식이 생겨선 안 된다”며 “10년 전만 해도 간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해 결혼을 못하거나 직장에서 잘리는 문제가 있었다. 협회에서 캠페인도 하며 인식이 개선됐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숨을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병역 기준을 까다롭게 한 탓에 뇌전증 환자가 군 입대를 해 사고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다”며 “병역기준을 까다롭게 하기 보다는 뇌전증을 병역면탈에 악용하는 사례를 법적으로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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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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