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와 의사가 ‘초음파’로 싸운다… 정부는 눈치만

한의사와 의사가 ‘초음파’로 싸운다… 정부는 눈치만

기사승인 2023-01-10 06:00:06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합법 판결을 놓고 의사 단체와 한의사 단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복지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관망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관련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 상고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씨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면허 외적인 의료 행위가 아니고, 안전하다는 이유에서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적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한의과 대학의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교육제도가 있는 만큼 위해도가 적으며 △진단용 기기와 같은 과학기술은 의사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성질로 보긴 어렵다는 사유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의사 단체 “판결 무효화될 때까지 투쟁”

이에 의사 단체는 즉각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성명서를 배포했다. 뿐만 아니라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재판 결과에 항의하며 삭발을 감행했고,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에선 릴레이 1인 시위를, 바른의료연구소는 전 한의협 회장과 대법 재판연구관을 고발했다.

지난 4일 서울특별시의사회 박명하 회장을 비롯한 150여명의 의사회원들이 모여 규탄대회를 열었고, 7일에는 의협 회관에 모여 ‘한의사 초음파 사용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대응을 위한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열고 대법원 한의사 초음파기기 판결의 부당함 홍보, 불법 한방의료 피해신고센터 운영. 파기환송심 대비 등 다양한 안건을 논의했다. 

특히 의사 단체는 반대 입장을 함께한 193개의 의학회를 대표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대법원 판결이 무효화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다. 

박성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은 “대규모 법률자문단을 구성하든지 대국민 홍보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집행부는 회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아 대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며 “대의원회는 14만 회원과 함께 회원의 권익과 국민 건강을 수호하기 위해 대법원판결이 무효로 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워나갈 것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한의사 단체, “현대의료기기 사용 확대 기대…교육 등 내실 강화”

한의사 단체는 의협의 반발에 일일이 맞대응하기보다는 내실 강화 및 국민 인식 개선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의사 단체의 지적에 대해 반박 대응한 ‘팩트체크’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는 의협이 지적한 ‘오진’ 문제가 의사 단체에도 해당된다는 점과 한의대 교육과 보수교육 등 커리큘럼으로 한의사 역시 충분한 질적 교육을 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한의사 단체는 이번 법원 결과를 계기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대비해 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현대의료기기 사용 관련 교육 인프라를 넓히는 등 진단기기 사용과 한의학 치료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향후 국민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의사 초음파 진단이 급여권에 들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나갈 방침이다.

권선우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의사단체가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 부정하고 몰상식한 대응을 이어가는 것이 심히 유감스럽다.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국민들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도한 비난이나 거짓 선동 등은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며 “협회는 판결 이후 진료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실을 기하고 있다. 회원 교육, 대국민 홍보 등의 회무에 집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급여화 관련해서는 국민들의 권익을 위해 필요한 만큼 앞으로 추진돼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만큼 언제든 정부와 논의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놓을 방침”이라며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서 폭넓게 허용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의협 측에서도 이를 활용해 국민건강에 기여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끝나지 않을 논쟁…복지부, 제3자 입장 일관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해당 사건은 파기환송된 상태로,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2심에서 재판을 다시 하지만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이 고등법원을 구속하기 때문에 고등법원은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것과 다른 내용으로 판결을 내릴 수 없다. 다만 파기사유가 아닌 판단은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어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승소 가능성이 있다.

즉, 서울중앙지법 판결 결과가 대법원의 결과를 뒤엎을 일은 적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제시했던 안전성이나 사용 근거 규정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제기된다면 논쟁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예측되더라도 한의사 단체와 의사 단체 사이의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진단기기 사용에 대해 양측이 서로의 신뢰성을 갉아먹는 대국민 홍보전도 이어질 예정이다. 그 사이에서 국민들의 안전성 우려와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당장 한의원에서는 하나 둘 초음파 진단기기를 도입, 진료시 보조로 활용하고 있는데 국민들은 이를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판단을 세우기 쉽지 않다. 

정부는 제3자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쿠키뉴스가 안전성에 대한 향후 계획 및 협회와의 논의 여부를 묻자 복지부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감안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라고 답변했다. 복지부는 과거 안압측정기, 청력검사기, 적외선 치료기 등 한의사 사용 승소 판결에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다.

급여를 시도했던 사례는 한 차례 있다. 복지부는 2018년 11월 국정감사 서면답변을 통해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 5종의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했을 때 건강보험 급여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의사 단체 반대로 무산됐다. 현재 초음파 기기를 포함 5종의 의료기기는 법원 판결로 사용 을 인정받았음에도 지침도 급여도 적용되지 않은 채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복지부는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 급여권 진입 여부와 그에 따른 자동차보험 손해율 증가 우려에 대해서는 “본 소관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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