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 2주 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원작 만화를 접했던 3040 남성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연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슬램덩크 속 작중 캐릭터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플레이스타일을 선보인다. 풋내기지만 엄청난 탄력으로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강백호’를 필두로 돌파와 슈팅까지 되는 만능 포워드 ‘서태웅’, 단신이지만 빠른 스피드와 패스가 돋보인 ‘송태섭’, 동료들을 살릴 줄 아는 센터 ‘채치수’, 한 번 들어가기 시작하면 누구보다 뜨거운 슈터 ‘정대만’까지.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고 불리는 프로농구는 현재 리그가 한창이다. 쿠키뉴스는 북산고의 캐릭터와 흡사한 국내 농구 선수를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현역과 은퇴 선수를 가리지 않고 팬들의 의견과 기자의 사견을 곁들여 후보를 추렸다.
송태섭 : 김승현
국내 농구 팬들은 송태섭의 플레이에서 김승현(은퇴)을 떠올린다. 한국 농구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선수 중 한 명인 김승현은 175㎝의 단신 가드지만 빠른 스피드와 예측할 수 없는 패스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김승현은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1년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대구 동양(현 고양 캐롯)에 입단해 리그를 지배했다. 마르커스 힉스와 함께 동양의 런앤건 스타일을 확립, 수년간 하위권에 처져 있던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김승현은 데뷔 시즌 신인왕과 정규시즌 MVP를 포함 베스트5, 어시스트상, 스틸상까지 5관왕을 달성했다.
국가대표 임팩트도 엄청났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대표로 선발돼 결승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패색이 짙던 순간 결정적인 스틸과 득점으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연장전에서도 연달아 키패스를 성공해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정대만 : 전성현
작중 농구에 대한 흥미를 잃고 방황 하던 정대만은 북산고 농구부에 돌아온 뒤 ‘불꽃 남자’라는 별명을 얻는다. 한국 농구에는 올 시즌 최고의 슈터로 거듭난 ‘불꽃 슈터’ 전성현이 있다.
전성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보수 총액 7억5000만원의 조건으로 고양 캐롯에 이적했다. 이적 후 첫 시즌부터 20.26점을 올려 득점 부문 전체 2위에 올라있다. 국내 선수 중에선 압도적인 1위다. 정규리그 1라운드와 3라운드 MVP에도 등극했다.
3점슛이 강점인 정대만처럼 전성현의 3점슛도 경이로운 수준이다. 올 시즌 경기당 평균 4.13개의 3점슛을 성공하고 있고, 성공률마저 43.39%로 상당히 높다. 전성현은 올 시즌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16경기 연속 3점슛 3개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스냅을 활용한 슛은 정대만의 슛폼과도 닮아있다.
전성현은 현역 최고의 슈터를 넘어 한국 최고의 슈터에 도전하고 있다. KBL에서 3점슛 성공 1위(1669개)에 올라있는 ‘람보 슈터’ 문경은 KBL 경기운영본부장도 “전성현에겐 나도 안 된다”라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서태웅 : 허재
지금은 고양 캐롯의 대표 이사로 있는 허재는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손꼽힌다. 오죽하면 별명이 ‘농구 대통령’이었을까.
허재는 ‘농구 대통령’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올라운더 플레이어였다. 물론 이 중 득점력이 가장 뛰어났지만, 어시스트나 드리블 능력도 돋보였다. 스몰포워드에 올라운드형 스타일인 서태웅이 연상되기도 한다.
불꽃 같은 승부욕마저 닮았다. 허재는 1997~1998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상대 선수에 부딪혀 눈덩이가 찢어져 출혈된 상태로 그대로 경기를 뛰기도 했다. 이전 4차전에서 손등 부상으로 깁스를 한 상황임에도 투혼을 발휘했다. 비록 팀이 패배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허재는 역대 KBL 준우승팀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허재와 서태웅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성격이 아닐까 싶다. 서태웅은 말수가 적고 과묵한 스타일이지만 감독과 예능인으로 비친 허재는 털털하고 호탕했다.
강백호 : 김현민
뛰어난 탄력, 예상치 못한 의외의 플레이까지. 김현민에게서 강백호가 보인다고 생각했던 농구팬들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김현민은 정규 시즌에서 보다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로 이름을 날린 선수다. 역대 3번의 덩크슛 콘테스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중 2011~2012시즌에는 등번호 10번이 새겨진 북산고 유니폼을 입고 빨간색으로 머리를 염색하는 등 강백호를 코스프레하기도 했다.
이후 2019~2020시즌 올스타전에서 김현민은 8년 만에 다시 강백호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그였지만, 골대 앞에 엎드린 3명을 뛰어넘어 원 핸드 슬램덩크를 꽂은 뒤 상의 유니폼을 탈의하는 세리머니로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채치수 : 이승현
이승현은 파워포워드로 작중 센터 역할을 소화하는 채치수와 포지션은 동일하지 않다. 다만 신장이 197㎝로 동일하고, 헌신적인 스타일임을 감안해 선정하게 됐다.
KBL에서 가장 헌신적인 선수를 꼽으라면 전주 KCC의 이승현이 곧장 떠오를 것이다. 이승현은 프로 데뷔 이후 항상 자신보다 크고 힘이 센 외국인 선수들을 마크해왔다. 이승현이 고양 오리온(현 고양 캐롯)에서 활약할 당시 감독이었던 추일승 감독은 이승현을 향해 “(힘든 수비를 시켜)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승현은 추 감독의 핵심이었다. 당시 오리온은 외인 선수로 빅맨이 아닌 포워드인 애런 헤인즈를 활용했다. 헤인즈가 빅맨 외국인 선수와 수비 매칭이 되지 않은 탓에, 이승현은 팀을 위해 항상 외인 수비를 맡았다.
당시 이승현은 채치수가 연상되는 듯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2015~2016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원주 동부(현 원주 DB)와 맞대결을 앞두고 “우리 팀에는 득점해줄 선수들이 많다. 굳이 나까지 할 필요는 없다”라면서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골밑에서 잘 버텨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왕공고전에서 ‘가자미’처럼 뒤에서 동료들을 돕기로 결심한 채치수가 생각나는 듯한 인터뷰였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