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직접 참여해 연금개혁”…말 뿐인 거 아니죠?

“국민 직접 참여해 연금개혁”…말 뿐인 거 아니죠?

5차 재정추계 시산 발표, 기금 소진 앞당겨져
정부·전문가 “사회적 합의 중요”
복지부 “간담회·토론회 개최, 구체적 일정 아직”
공론화 통상 90일 소요…공론화 위원회도 구성 안 돼

기사승인 2023-02-01 13:00:02
국민연금공단.   쿠키뉴스 자료사진

국민연금이 오는 2055년 모두 소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부정적 전망이 나온 만큼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 연금개혁에 무게가 실린다. 24년간 미뤄온 연금개혁 부담을 짊어지게 된 MZ세대 사이에서는 “차라리 안 내고 안 받고 싶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가장 중요하지만 국민 의견 수렴 절차는 아직 상당 부분 미지수다. 

2년 앞당겨진 기금소진 시점…MZ “그냥 낸 거라도 돌려줘요”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지난 25일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결과(잠정)를 발표했다. 5년 전인 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당시 내놓은 소진 예측 시점 2057년보다 2년 앞당겨졌다. 수지적자 시점은 2042년에서 1년 앞당겨졌다.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17~24%로 현재 9%의 배가 넘게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청년층 사이에서는 돈은 돈대로 내고 노후에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이 크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강모(35)씨는 “지금까지 낸 보험료를 환급받고 싶다”며 “노후에 지급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왜 강제로 보험료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20~30대 중 미래 연금 수령을 신뢰하는 비율은 30% 미만이었다. 

20~30대 사이에서는 ‘차라리 덜 내고 덜 받겠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청년층은 62%가 “덜 내고 덜 받자”는 연금개혁 방향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고령층의 경우 75%가 “더 내고 더 받자”고 답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모(27)씨는 “만약 보험료율을 24%로 올린다면 회사에서 절반을 내줘도 월급에서 12%가 나간다는 말 아닌가”라면서 “요새 경기도 어려운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국민연금 보험료 낼 돈으로 차라리 적금을 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5차 재정계산에서 내놓은 재정수지 전망.   보건복지부

관건은 사회적 합의…정부 “국민 직접 참여”

보험료율, 수급개시 연령, 정년 연장 등 연금개혁 논의는 미래세대와 현재 수급 연령인 노년 세대의 양보가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좀 적게 받더라도 사망할 때까지 확실히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젊은 세대에 줘야 한다”며 “90년대생의 동의와 참여가 연금개혁의 동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과 함께 개혁안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혀왔다. 조 장관은 지난 11일 KBS1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국민들께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직접 연금개혁 작업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면서 “공론화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토의를 토대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    보건복지부

국민 의견 수렴 어떻게?…아직 대부분 미정

현재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정부와 국회가 두 갈래로 진행 중이다. 국회 연금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활동 시한인 4월 말까지 국회안을 확정하고, 정부는 국회안과 별개로 10월 말까지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국민연금개혁 과정에서 국민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는 걸까. 먼저 복지부는 노동계·사용자·노인층·청년층·전문가 등 주요 집단별 간담회와 대국민 토론회 등을 계획 중이다. 구체적 안은 나오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구상 중”이라며 “일정, 인원 등 세부 사항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청년층을 대상으로 2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11월 간담회에는 복지부가 국민의견 수렴을 위해 실시한 ‘백지광고’에 참여한 청년 4명과 국민연금 대학생 홍보대사 3명, 총 7명이 참여했다. 12월에는 청년 관련 단체에서 추천받은 대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등 20~30대 11명이 참석했다. 

연금특위가 담당한 공론화 작업 역시 갈 길 멀기는 마찬가지다. 공론화는 사회적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해 숙의과정(학습과 토론)을 통해 시민 의견을 모으는 기법이다. 연금특위에서는 국민대표단 500명을 뽑아 공론화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가장 대표적 공론화 모델 2가지, 신고리 5·6호기(2017년)와 대입제도개편(2018년)을 참고하고 있다. 두 전례 모두 공론화 과정에 90일이 걸렸다.

공론화 작업을 설계·관리할 공론화 위원회는 아직 꾸려지지 않았다. 지역·성별·연령을 고려, 확률추출을 통해 참여 의사가 있는 국민대표단 500명 선발이 필요하고, 실무조직인 공론화 지원단도 설치돼야 하는 등 과제가 산적하다. 복지부에서는 일단 신고리 공론화위에 참여했던 위원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는 등 실무에 착수했다. 또 조만간 국민대표단 500명을 뽑을 조사업체 공모에 나설 계획으로 알려졌다.

광화문에서 출근하는 직장인들.   쿠키뉴스 자료사진

갈 길 먼 국민 의견 수렴…해외서는 수년씩 걸리기도

연금특위는 지난해 7월 여야 합의로 설립됐다. 오는 4월 말 활동이 종료된다. 공론화위 구성이 늦어지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연금특위 관계자는 “국민 대표단을 뽑아 공론화 진행하기로 의결한 게 이달 초다. 지체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라며 “전례를 살펴보면 공론화 지원단만 20명 이상 필요하고 예산도 30억~42억원 규모로 적지 않다. 실무적으로 준비할 게 많다”고 부연했다. 

연금개혁 일정이 촉박해 실질적인 국민 의견 반영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에서는 연금개혁이 2002년 시작해 2012년 마무리됐다. 2005년 전국 8개 지역을 대상으로 노동연금성 장차관과 이해관계자가 참가하는 국민토론회를 개최했다. 2006년 두 달간 전국 순회 대국민 토론회를 열고, 설문조사 등을 통해 대국민 의견을 수렴했다. 일본은 사회적 논의과정에 3년이 걸렸다. 6개월간 부총리·장관이 전국 66개 지역을 방문해 개혁 내용을 시민에게 설명하고 의견 청취하는 대국민 설명회를 시행했다.

청년층에서도 의심이 짙다. 권모(26)씨는 “청년층 동의 받는다고 말은 하는데, 우리는 들러리고 결국은 윗세대와 정부가 밀어붙이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3·여)씨는 “90년생부터는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89년생으로서 1년 받고 끝나는 건지 불안이 크다”며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중요한 논의를 8개월 만에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다른 법안들처럼 졸속으로 진행되는 게 아닐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연금특위 한 민간 자문위원은 “해외에 비해 국민 의견 수렴 기간이 짧은 편”이라며 “국민연금개혁 이야기가 나온 지 워낙 오래돼 국민에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사안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개혁 방법이나 구체적 안이 국민에게 세세히 전달된 것 같지는 않다. 정부가 서두르는 경향이 없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 의견 수렴이 형식적 절차에 그치지 않도록 청년층 대상으로 한 연금개혁 홍보를 추가로 할 계획”이라며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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