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꿈을 꾼다: 비인간동물과 사는 삶 [쿠키칼럼]

개도 꿈을 꾼다: 비인간동물과 사는 삶 [쿠키칼럼]

강민진 청년정의당 전 대표

기사승인 2023-02-13 10:47:03

5년여 전, 검은 눈동자와 복실한 흰 털을 가진 네 발의 생명체가 내 삶에 들어왔다.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버려졌는지 알 수 없는 개였다. 강원도에 등록되었던 개가 어쩌다 울산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오리무중이었다.

안락사 전 구출한 그의 나이는 추정으로만 존재했고 이름도 없었다. '바람', 동생이 이름을 지어줬다. 나는 반려인이 되기 위해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이 구체적인 생명체를 키우기 전까지는 개라는 종에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의 행동이나 꼬리의 모양새를 읽는 법부터, 무언가를 가르쳐주는(훈련) 방법, 개에게 위험한 음식, 필요한 예방접종과 개가 걸릴 수 있는 질환의 종류 등을 책과 영상을 통해 이론적으로 배워나갔다. 그런 학습은 필요하고 유익한 것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현실에서의 좌충우돌은 피할 수 없었다.
필자의 반려견 '바람이'.

그 시절의 나는 견주로서 초보였고 한편 이 강아지는 천방지축의 성견이었다. 아기 강아지 시절 배워야 할 것들을 못 배운 채 어른이 되어버린 개였다. 더군다나 버림받았던 경험 때문인지 정서적으로도 불안했고 시끄러웠으며 서투른 공격성을 보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이 아이를 목욕시키던 날, 버둥거리며 도망가는 강아지를 잡아서 씻기는데 혹시 세게 붙잡으면 뼈라도 부러질까 무섭고 자꾸 샴푸물을 먹으려 해서 못 먹게 하면 으르렁거려 된통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난다. 나는 물리기도 자주 물렸었다(이런 물림 사고에는 나의 서투름 탓이 컸고, 바람이는 보호자 외엔 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별 것 아니었다. 아직도 악몽의 소재가 되곤 하는 그날 일에 비하면. 그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나는 바람이에게 하네스(목줄)를 채워 동네 산책을 나갔다. 그 전까지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만 산책을 했었는데, 처음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 같이 나가보았던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건물 공동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이 강아지는 몸을 낑낑거리며 비틀더니 하네스를 탈출해 저 멀리 혼자 달려 나가 버렸다. 나도 따라 달리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쟤 좀 잡아주세요!" 몇몇 행인들이 잡아주려 시도했지만 날쌔게 빠져나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바람이는 4차선 차도로 뛰어들었다. 두 번 생각할 새 없이 나도 같이 뛰어들어 팔을 높이 휘저으며 달리는 차들을 세웠다. 그렇게 차도를 횡단한 강아지는 결국 건너편 인도의 한 행인에게 붙잡힌 채 신나는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문제는 그날 이후 내가 이 작은 동물의 판단력을 과소 신뢰하게 되어 그의 안전에 매우 예민해진 것이었다. 산책을 할 수 있는 범위와 시간대가 대폭 줄어들었고, 입에 넣을 수 있는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져 있을지 전전긍긍했다. 개를 두고 외출할 때면 안심이 되지 않아서(어디 올라갔다가 떨어질까, 혹시나 바닥에 떨어진 무언갈 먹고 잘못될까 등등) 1평가량 되는 울타리 속에 가두고 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울타리에 분명 가두고 나갔는데 나갔다 돌아와 보면 이 강아지는 울타리 밖으로 천연덕스레 나와 있었다. 반려동물용 홈CCTV를 확인해보니, 밖에서 잠그는 울타리 출입문 걸쇠를 안에서 여는 방법을 터득해버린 것이었다. 그 충격적인 장면에 울 수도 없어 크게 웃고 울타리를 치워 버렸다.

함께한 세월이 쌓여 개가 되었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바람이는 정말 '개가 됐다'. 그러는 데 걸린 시간은 짧지 않았다. 반려견 훈련방법에 대해 각종 이론들을 학습하긴 했으나 크게 통했던 방법은 없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익숙해지고 그도 나에게 적응해가며 서로 여유를 찾는 시간이 길고 길게 쌓이면서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이 됐다. 처음에는 배변훈련을 시키느라 온갖 제품을 사서 써봤지만, 결국에는 그냥 지겹도록 똥오줌을 닦아 주니 어느새 배변패드에 일을 보고 있었다.

먹을 것만 보이면 숨도 안 쉬고 배 터져라 먹더니, 언젠가부터 자기 먹고 싶을 때만 정도껏 먹는 자율배식 강아지가 되었다. 엉덩이나 다리에 손을 스치기만 해도 물어뜯으려 하던 때도 있었건만 이제는 허벅지 마사지도 해줄 수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장난감을 줘도 뭐 하는 데 쓰는 건가 멀뚱히 있었는데, 지금은 삑삑 소리 나는 공 하나만으로도 온 집안을 달리며 신나게 논다.

언어가 달라도 그와 나는 의사소통을 한다. 다만 사람과 개라는 다른 종의 동물 사이라 좀 더 많은 시간이, 진득함이 필요할 뿐이다. 수백 번의 상황이 쌓여 이제 나는 그의 행동, 소리,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역시 나의 작은 손짓과 소리 각각에 다르게 반응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듣기 위해 스스로 변화하고 조정되었으며, 각자의 몸짓과 소리는 서로에게 적당한 방식으로 조율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의 대화는 이종(異種)간의 소통이기에 여전히 겸손이 강제된다. 나는 개가 아니므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완벽하게 들을 수 없고 개로 산다는 것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더 귀 기울여 듣되 내가 알아들을 수 없음을 늘 실감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집중하기 위해 그가 귀를 쫑긋 세울 때처럼 말이다.

단지 ‘개’이기만 하지 않은 ○○○

하루는 자고 있는 바람이가 잠꼬대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비인간동물 역시 잘 때 꿈을 꾼다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의 꿈은 인간의 꿈과는 구조적으로 다르고, 또 그 어떤 개들과도 같지 않은 내용의 꿈일 것이다.

페미니즘 이론가로 알려진 도나 해러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주문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추상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대일 관계, 연결된 타자성을 통해 개가 누구이며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바람이를 만나기 전, 나는 내가 동물권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름의 논리와 신념도 있어 채식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고유한 존재로서 비인간동물인 생명체와 관계를 맺는 일은 완전히 새롭고 신비한 경험이었다. 관계 속에서 나는 '인간과(科) 동물' 이상이 되고, 바람이는 단지 '개'이기만 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존재를 바꾸어 놓는다. 인간 간의 관계가 그렇듯이, 다른 종의 동물 간에도 그런 마법이 일어난다.바람이와 나는 종종 서로를 따라한다. 내가 베개를 베고 누우면 그도 같은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그가 나의 몸을 킁킁거리면 나도 따라 킁킁거린다. 나는 바람이로 인해, 그는 나로 인해 변한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전 대표 contact.minjin@gmail.com

※본 칼럼은 개인의 경험일 뿐 개를 키우는 방법에 관한 전문적인 조언이 아닙니다.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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