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아이들이 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어 교육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다. 이들을 위해 관련 시민단체들과 민간기업 유니클로가 두 손을 맞잡았다. 이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기초학습능력과 대인관계 및 사회성 향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훌륭한 사회 일원으로써 자리 잡게끔 지원할 방침이다. 나아가 이들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의 제도적 보완까지 이뤄낼 수 있길 바랐다.
느린 학습 아동, 누구일까요?
서울시는 지난달 전국 132만명으로 추산되는 ‘경계선지능인’의 평생교육 지원을 본격화하기 위해 2023~2025년까지의 3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경계선지능인이란 지적장애에 해당은 안되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 못하는 인지능력을 가진 자들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교육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관련 단체에서는 소위 ‘느린 학습자’라고 호명된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서울특별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이어 전국 최초로 중구 회현동에 서울시 경계성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개관했다. 3개년 계획은 4개 분야 15개 추진과제로 구성됐다. 경계선지능인의 자립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경계선지능인 발굴·지원 체계 구축 △맞춤형 평생교육 및 자원기반을 확충 △연구개발 기반 수립 △지역사회 인식 전환 등의 내용이 담겼다.
22일 유니클로 캠페인 간담회에서 이교봉 서울시 경계성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 센터장은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회적 약자가 존재한다”며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들은 일정한 제도 속에서 정책적 도움을 받고 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계선지능인’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우리 사회 경계에 위치해 어느 곳에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무너지는 자존감, 열등감, 정서적 불안정을 가진 채 성인으로 자라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보람 진건중학교 특수교사는 "느린 학습자는 한 번에 배우는 양이 적고 느리게 배우는 학생이다. 이들은 전국민의 13.4%에 해당하며 한 반에는 2~3명이 존재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법상 장애등록이 안되어 있어 공적 지원과 재원이 없고 특수교육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아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학습, 관계, 심리적으로 나타난다.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권리는 주어졌지만 아이들이 가진 인지적 특성으로 제대로 된 학습 이뤄지지 못하다보니 또래 아이들과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며 ”이로 인해 따돌림이나 학교폭력의 피해자나 억울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심리적 어려움에 봉착한 상태로 학교생활을 지속할 경우 사회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민단체는 글로벌 민간기업 유니클로와 손을 잡았다. 유니클로는 ‘천천히, 함께’ 캠페인을 통해 느린 학습 아동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아이들과미래재단’에 전달된 10억원은 향후 10개월 간 느린 학습 아동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사용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기초학습능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1대1 멘토링 학습을 진행할 예정이다. 퇴직교원, 정교사 자격증 소지자, 교육대학교 학생 등과 주 1회 50분 수업으로 진행하며 학교 및 사회복지시설에서 3R(읽기·쓰기·셈하기), 독서 및 문해력, 멘티 수준 맞춤형 교구재를 지원한다. 또 진단 지원을 비롯해 대인관계 및 사회성을 형성할 수 있는 체육 관련 그룹 활동 프로그램도 전개할 방침이다.
유니클로 모회사 패스트리테일링 그룹의 셸바 에이코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교육이 늘면서 아이들의 교육 격차가 커졌다”며 “교육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느린 학습 아동들이 우리 사회의 건장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병기 아이들과미래재단 본부장은 “정부, 기업, 비영리조직 3개의 주체가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세상은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다”며 “정부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안에 대해 세금을 쓰고 있다면 아이들과미래재단과 같은 비영리조직의 역할은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발굴해 내는 데에 있다. 느린 학습자가 이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재단은 유니클로라는 기업과 함께 지난해 11월부터 관련 문제에 대해 논의하여서 이같은 방법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아이들과미래재단은 일본 불매운동의 대표 기업 중 하나였던 유니클로와의 협업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대해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김 본부장은 “저희는 아이들의 미래를 보고 일한다.기업들이 사회공헌을 하는 데 전략적 파트너로서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고 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영리 조직이 문제를 발견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면 기업은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자원을 지원한다. 그리고 정부는 캠페인 성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적용시킨다”며 “무엇보다 여기에는 국민적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 느린 학습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모두가 힘써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