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굶어 봤니? 굶으면 어떠니?" [쿠키칼럼]

"너 굶어 봤니? 굶으면 어떠니?" [쿠키칼럼]

경동시장 시식코너 도는 노인의 식사...세계 어린이 25% 발육부진

기사승인 2023-02-23 14:55:30
[쿠키칼럼-신복룡]

나는 아내의 짐꾼 노릇을 하느라고 가끔 서울 동부 경동시장 어물전을 따라간다. 아내는 시시콜콜 맛과 값을 따지는 동안 나는 멀거니 서서 세상을 배운다. 
구황 작물 메 뿌리. 필자 제공

그곳에는 그리 누추하지 않은 노인이 자주 눈에 띈다. 손에는 작은 물병이 들려 있다. 그는 가게마다 들려 시식 코너에 있는 젓갈이며 이것저것을 이쑤시개로 찍어 먹고 물을 마신다. 그가 너무 많이 먹는다 싶으면 주인이 와서 말한다. 

“오늘은 그만 드시지요.”

그러면 그 노인은 다른 가게로 간다. 그 노인이 떠난 다음, 주인이 나에게 말했다. 

“저분은 저게 식사예요.”

이 대명천지에, 언필칭 세계 10대 부국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세계 기아 지수(Global Hunger Index, GHI)에 따르면 세계의 식량 생산량은 굶주리고 있는 지구인 모두가 먹고 남는다. 그러나 지금 세계 인구의 11%가 허기진 채 잠자리에 들어 뒤척거린다. 

어린시절, 부잣집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너 굶어 봤니?”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면 그가 다시 묻는다. 

“굶으면 어떠니?”
“…….”

참 잔인한 질문이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굶으면 기운이 없다구? 굶으면 서럽다구? 모두 괜한 소리요, 굶어 보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배가 고프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먹는 것의 기쁨이 형이하학적이라면 굶주림의 슬픔은 형이상학적이다. 

배가 너무 고파 고드름을 따 먹었다. 부잣집 아들이 말했다. 

“어차피 녹을 건데 물을 마셔.”

나는 차마 대꾸를 못 했다. 나는 속으로 울면서 말했다. 

“물은 씹는 맛이 없잖아…….”

보릿고개라면 다 굶어 죽는 줄 알지만, 그것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오히려 보릿고개에는 허기를 면할 수 있다. 아카시아꽃 다섯 송이면 우선 허기는 면할 수 있다. 입이 빨개지도록 진달래꽃을 따 먹는 방법도 있고, 칡처럼 탄수화물과 당도가 높은 간식도 있다. 

가끔 먹기는 하지만 돼지감자는 무척 아리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그때에는 밭두렁에 메라는 뿌리 식물이 있었는데 골짜기의 흐르는 물에 씻어 먹으면 당도가 높고 씹는 촉감도 좋다. 무 서리며 고구마 서리며 밀 서리는 큰 죄의식 없이 해냈다. 속이 좋지 않아 변소라도 자주 갈라치면 엄마가 말씀하셨다.

“오줌을 참으면 병이 되지만, 똥을 참으면 배가 덜 꺼지는데, 웬 변소를 그리 자주 가니?” 

배 꺼진다고 뛰지도 못하게 했다. 단백질은 미꾸라지와 메뚜기와 개구리 뒷다리와 올갱이(민물 소라)로 채워 겨우 영양 실조를 비켜 갈 수 있었다. 1940-50년대 우리의 소년 시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오늘날 세계 어린이의 25%가 발육 부진과 체중 미달이다. 강대국에서는 세계 인구가 먹고 남을 식량을 생산하는데 왜 사람들은 굶주리는가? 그들이 먹고 남아 버리는 음식, 이른바 잔반(殘飯)만 아껴도 아프리카는 굶지 않는다.

파키스탄의 중산층의 영양 상태가 한국의 애완견의 영양 상태보다 나쁘다. 중세 유럽이나 조선의 양반들은 종일 먹다 배가 차면 나가서 토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고 와 다시 먹었다. 그 죗값을 어디 가서 다 받으려나? 
“굶주리지 않게 하옵시고.....”(Core te Quaerentium, 가톨릭 성가 169 )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충북 괴산 출생으로 건국대 정외과와 같은 대학원 수료(정치학 박사). 건대 정외과 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 및 대학원장,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1999~2000), 국가보훈처 4⋅19혁명 서훈심사위원(2010, 2019),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 및 위원장(2009~2021) 역임. 
 저서로 '한국분단사연구'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등 다수, 역서로 '정치권력론' '한말외국인의 기록 전 11책' '군주론' 등 다수. 

simon@konkuk.ac.kr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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