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콜 제인’은 강하다 [쿡리뷰]

우리는, ‘콜 제인’은 강하다 [쿡리뷰]

기사승인 2023-03-08 11:30:12
영화 ‘콜 제인’ 포스터. ㈜누리픽쳐스, ㈜영화특별시SMC

변호사 남편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 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는 내조가 전부인 단조로운 일상을 산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만찬 자리를 찾은 조이는 건물 밖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놀란다.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그에게 사회에 반하는 단체 행동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임신으로 목숨이 위험해지며 안온하던 조이의 세상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1968년 미국 시카고에서 조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영화 ‘콜 제인’은 임신 중절 수술이 불법이던 1960년대부터 1973년까지 실제로 활동하던 제인스(The Janes)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당시 제인스는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여성 약 1만2000명의 중절 수술을 도왔다. 전업주부, 직장인, 학생 등 다양한 여성이 제인스와 함께했다.

‘콜 제인’은 전업주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기 몸 결정권이 없는 현실이 여성의 삶을 얼마나 뒤흔드는지 담담한 시선으로 그린다. 긴급 임신 중절 수술 위원회에 참석하지만, 전원 남성인 위원들은 임신 당사자인 조이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임신 당사자인 조이는 그들의 안중에 없다. 조이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지만, 그들은 시시한 대화 끝에 너무도 손쉽게 반대를 외친다. 영화는 불합리한 당시 현실을 비추며 극이 다루는 주제로 관객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영화 ‘콜 제인’ 포스터. ㈜누리픽쳐스, ㈜영화특별시SMC

좌절한 조이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임신으로 불안하다면, 제인에게 전화하세요’라는 포스터에 희망을 걸기로 한다. 팀 제인은 비밀리에 움직인다. 불법 행위인 임신 중절을 주선해서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자행하는 시술은 언뜻 못 미더워 보인다. 하지만 이곳까지 다다른 여성들에게는 대안이 없다. 조이는 공포에 떨며 의사 딘(코리 마이클 스미스)과 어렵사리 마주한다. 수술 시간은 단 20분. 조이에겐 1분1초가 공포다. 두려움에 떨던 그는 수술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팀 제인과 만난다. “누가 제인이냐”고 묻는 조이에게 팀 제인의 여성들은 답한다. “아무도 제인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 제인이죠.”

팀 제인은 오로지 여성을 위해 결성한 여성 집합체다. 불법 행위에 더 이상 연관되고 싶지 않던 조이는 우연한 기회로 팀 제인을 돕게 된다. 팀 제인은 여성을 도울 뿐 그의 삶을 캐묻지 않는다. 겉만 보고 속단하지 않는다. 이들은 단순하게 움직인다. 여성이 도움을 요청하면 그저 도울뿐이다. 영화는 얌전하던 가정주부 조이가 달라지는 과정을 밝은 분위기로 담아낸다. 연대하는 여성은 ‘콜 제인’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이번 한번만”이라며 팀 제인 일을 시작한 조이는 “돈이 있든 없든 도움이 필요한 건 똑같다”며 더 많은 여성을 돕자고 호소한다. 조이는 그렇게 ‘제인’이 돼 간다.

영화 ‘콜 제인’ 포스터. ㈜누리픽쳐스, ㈜영화특별시SMC

조이는 팀 제인으로 활동하며 변화를 겪는다. 수동적이던 그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간다. 숨겨왔던 당찬 면도 드러낸다. 자신에게 소질이 있다며 “간호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 하는 딘에게 조이는 “의사가 될 수도 있었죠”라고 응수한다. 영민한 머리로 남편의 서류 정리나 돕던 조이는, 팀 제인과 함께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기꺼이 뛰어든다.

‘콜 제인’은 상영 시간 동안 끊임없이 직구를 던진다. “세상의 여자들이여 뭉치자”는 포스터 글귀부터 “더 많은 여성을 도와야 한다”와 같은 직관적인 대사는 예고 없이 마음에 훅 들어온다. 공감 가는 부분도 여럿 보인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무력감과 공포감, 연대하며 자아 확장을 이루는 조이 모습에는 이입할 여지가 많다. ‘콜 제인’은 여성과 함께하는 여성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를 볼수록 누구나 마음속에 잊고 있던 각자만의 ‘팀 제인’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를 변화시키는, 그리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연대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누군가는 잊고 있던 불씨가 되살아날 수도 있겠다. 마음으로 연대하는 우리는, ‘콜 제인’은 강하다. 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1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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