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이보영 “꽂히는 작품 더 만나고 싶죠” [쿠키인터뷰]

‘대행사’ 이보영 “꽂히는 작품 더 만나고 싶죠”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3-10 06:00:11
배우 이보영. 제이와이드컴퍼니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유리천장은 여전히 있다. 성별이, 배경이, 연줄이 도약을 막는 일이 곳곳에 도사린다. 뚫을 수 없어 보이는 벽 앞에서 혹자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부딪힌다. JTBC ‘대행사’에 등장하는 고아인은 명확히 후자다. 벽 넘어 또 벽이어도 그는 힘껏 발버둥 친다. 외피를 더욱 견고히 하며 전략적으로 맞부딪힌다. 내면은 허물어질지언정 겉은 꼿꼿하고 뾰족한 사람. 고아인을 연기한 배우 이보영은 날이 바짝 선 눈으로 호승심과 공허함을 담아낸다. 

“이렇게나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최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보영은 특유의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만족감을 표했다. 서늘한 고아인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저희끼린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상관없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반응까지 좋잖아요!” 쾌활하게 말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뿌듯함이 엿보였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는 고양감도 느껴졌다. ‘대행사’로 조직생활을 간접 체험한 그는 고아인의 치열함 속 측은함을 포착했다. 연기는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고아인과는 공통점이 없어요. 그렇게 강박적으로 살고 싶지도 않고요. 속은 약한데 겉으론 센 척하는 사람은 못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고)아인이가 더 측은하고 안쓰러웠을지도 몰라요.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서는 장면이 참 마음 아팠어요. 촬영하면서 ‘회사 다니기 정말 힘들다’, ‘하루하루 전쟁터구나’ 생각했어요. 저도 나름대로 사회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조직생활은 비교도 안 되더라고요.”

혀를 내두른 순간이 여럿이다. “진짜 이래요? 이렇게까지 해서 승진해야 해요? 사내정치를 이렇게나 해야 한다고요?” 촬영하며 종종 감독에게 이렇게 묻곤 했단다. 동시에 망설임 없이 직설하는 고아인을 보며 시청자가 대리만족하길 바랐다. 스스로 고양심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 반발하는 이들에게 ‘이끌든가, 따르든가, 비키든가’ 문구를 보여준 3회가 그렇다. 밟히기만 하던 고아인이 반격을 시작한 이 장면은 시청자 사이에서도 숱한 화제를 모았다. 공세에도 꺾이지 않은 고아인은 점차 우군을 늘려간다. 그러면서 마음의 품도 넓어진다.

JTBC ‘대행사’ 스틸컷. 하우픽쳐스·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아인이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지도 몰라요. 성공을 갈구하던 이유는 간단해요. 돈을 많이 벌면 무시를 안 당할 줄 안 거죠. 하지만 성공을 위해 협업하며 많은 걸 깨달아요. 사람답게 살며 가족사로 인한 아픔도 극복하고요. 그렇게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아인이가 타인과 교류하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돼 기뻤어요.”

이보영 역시 우군 덕에 성장을 이뤘다. 대표적인 이가 남편이자 동료 배우 지성이다. 데뷔 초 이보영은 고민 많은 배우였다. 일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하고, 촬영장에 가는 게 마냥 겁났다. 다른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하던 이보영은 연기가 신나고 설렌다는 지성이 마냥 신기했다. “호기심에 관찰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연기가 재미있더라고요. 그때 KBS2 ‘적도의 남자’를 만났어요.”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전작 이야기로 흘러갔다. 이보영은 2012~2013년에 연달아 선보인 ‘적도의 남자’와 차기작 KBS2 ‘내 딸 서영이’,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큰 성공을 거두며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여전히 당시를 각별하게 기억했다.

“지금의 이보영을 만든 시기예요. 작품마다 쉬는 기간이 한 달도 채 안 됐어요. 그때는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뻗어간 기분이었어요. 모든 감각이 섬세하게 작동했거든요.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대본에 마구 몰입하고…. 마음속 진폭이 참 컸어요. 잘 해내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열심히 하지만 그때는 정말 열렬했어요. 작품을 마칠 때마다 엉엉 울었어요. ‘내 딸 서영이’를 촬영할 땐 OST만 들어도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였죠. 이제는 생활에 육아가 스며들다 보니 육감이 사라진 기분이에요. 지금도 좋지만, 때때로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해요.”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달리던 과거를 지나, 이보영은 가족을 생각하며 달린다. 퇴근하면 엄마로 출근하는 현재가 행복하단다. 아이를 키우며 연기와 삶을 분리했지만, 오히려 그의 연기 세상은 더 견고해졌다. 늘 재미있는 작품을 선택한다는 이보영은 차기작에서도 전문직을 연기한다. 그는 “언제나처럼 사연도 많고, 부모복도 없는 캐릭터”라고 웃으며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연기가 참 재밌어요. 현장에 가면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껴요. 저를 꽂히게 만드는 작품을 더 만나고 싶어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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