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영이 ‘더 글로리’ 최혜정에 빠져든 순간 [쿠키인터뷰]

차주영이 ‘더 글로리’ 최혜정에 빠져든 순간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3-17 06:00:17
배우 차주영. 넷플릭스

최근 촬영 차 공항을 찾은 배우 차주영은 재미난 경험을 했다. 입국장에서 마주친 승무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어머! 스튜어디스 혜정아!”라며 아는 체를 해와서다. 지난 10일 파트 2 공개를 마친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의 인기 덕이다. 극 중 최혜정 역을 연기한 그는 요즘 어딜 가도 ‘더 글로리’ 이야기를 듣는다. “스튜어디스 혜정이 왔어요~.” 15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차주영의 명랑한 인사에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차분하면서도 쾌활한 차주영에게서 최혜정을 떠올릴 틈은 없었다. 폭탄머리가 아닌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큰 눈을 반짝이며 말을 잇기 시작하자 최혜정이 곧장 떠올랐다. 그는 전 회차를 공개하고 나서야 인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감사 인사를 전하기엔 우려가 컸단다. 대신 부푼 마음을 SNS에 고스란히 표현했다. ‘나 최혜정~’으로 시작하는 그의 ‘과몰입’ 게시물은 시청자에게 화제였다.

“최혜정은 가해자예요. 옹호할 수 없는 인물이죠. 그래서 작품이 인기를 얻어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긴 조심스럽더라고요. 시청자분들이 보내주신 사랑에 SNS로나마 보답하고 싶었어요. 과몰입 글에 좋은 반응을 보내주셔서 더 감사했어요. 기억에 남는 반응도 많아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날라리’라는 댓글은 특히나 더 좋아서 캡처까지 해놨어요. 차분한 이미지에서 탈피한 것 같았거든요. 늘 고정관념을 깨고 싶던 터라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넷플릭스 ‘더 글로리’ 스틸컷.

차주영은 최혜정에 몰입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았다.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최혜정이라고 믿으며 연기했다. 안길호 감독에게 최혜정을 자처해 비속어를 선보이고 캐스팅을 확정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촬영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지던 그는 대본에서 답을 찾았다. ‘동은(송혜교)이가 아니었으면 너였어’라는 대사가 열쇠였다. 머리를 비우고 원점으로 돌아가자 비로소 최혜정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혜정이가 이리저리 흩날리는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두려움과 허영, 뒤틀린 욕망, 허세가 뒤엉켜 잘못된 방향으로 가잖아요. 가진 것도 없으면서 외면에 집중하느라 여기저기 구멍 난지도 모르는 어설픈 사람이에요. 늘 눈치 보면서도 들키지 않으려 하고요. 스스로도 사라, 연진과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인 걸 인지하거든요.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멸시와 무시를 받을 테니 기를 쓰고 아닌 척해야 해요. 같은 계급처럼 보이는 것에 중독된 말로인 거죠.”

최혜정이 가해자 집단에서 가장 마음을 쏟는 건 전재준(박성훈)이다. 시청자 사이에선 최혜정이 진정으로 전재준을 좋아한 건지 의견이 분분했다. 차주영은 진심이라고 해석했다. “좋아하긴 했어요. 다만 연진이를 향한 질투, 오기, 순정이 모조리 뒤엉켰을 뿐이죠.” 온갖 감정에 시달리던 최혜정은 동등한 부류이고 싶던 친구들과 오랜 짝사랑의 등에 칼을 꽂는다. 문동은의 실질적인 망나니가 된 셈이다. 최혜정이 결혼으로 부의 사다리를 탄다면 어땠을 것 같냐는 질문에 차주영은 “박연진 같진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혜정이 자라온 환경이 그를 욕망하게 한 근원이라고 봐서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스틸컷.

“이상을 실현한 혜정이는 나쁜 짓을 일삼는 친구들에게서 벗어나려 할 것 같아요. 제 소망을 반영한 말이기도 해요. 혜정이가 꼭 개과천선하면 좋겠거든요. 혜정이는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비자발적인 가해자예요. 동은이가 없었다면 자신이 괴롭힘을 당할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혜정이가 저지른 짓은 결코 옳지 않아요. 잘못을 인지하고 용서를 구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안 했잖아요. 잘못한 건 심판받아야죠. 저는 인과응보를 믿거든요. 그래서 ‘더 글로리’가 더 좋았어요.”

‘더 글로리’가 큰 성공을 거두며 차주영은 여느 때보다도 주목받고 있다. 전작 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tvN ‘치즈 인 더 트랩’이 다시 회자될 정도다. 차주영은 동일인물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달갑다고 했다. “늘 듣던 이야기”라고 말을 잇던 그는 “꾸밈새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져 많이들 못 알아본다”며 씩 웃었다. ‘더 글로리’는 차주영이 배우로서 꿈꾸던 소망을 이루게 한 첫 단추다. 그는 “어떤 이미지에도 갇히지 않은 채 변화하길 원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더 글로리’를 촬영하며 다른 작품 세 편을 함께 작업했어요. 하지만 작품 속 캐릭터가 저인 건 다들 모르시더라고요. 앞으로도 얼굴 인식이 되지 않으면 좋겠어요. 편견 없이 더 많은 캐릭터를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제 색깔을 담되, 저처럼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할 거예요. 언젠간 캐릭터보다 배우 차주영이 앞서는 순간도 오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래요.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기엔 여전히 못해본 역할이 많거든요. 매번 다른 모습으로, 하나씩 도전할 거예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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