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남이’, 첫술에 배부르랴 [쿡리뷰]

‘웅남이’, 첫술에 배부르랴 [쿡리뷰]

기사승인 2023-03-21 06:00:21
영화 ‘웅남이’ 스틸컷. 웅남이문화산업전문회사, CJ CGV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곰. 영화 ‘웅남이’(감독 박성광)는 단군 신화를 요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코미디 액션 장르극이다. 곰에서 사람이 된 웅남(박성웅)은 동물적인 감각과 뛰어난 신체 능력을 살려 경찰로 일하지만,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상심해 백수의 삶을 택한다. 그러던 어느 날, 웅남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테러 조직원이 나타났다며 공조 수사대 합류를 권유받는다. 과연 그는 양어머니 경숙(염혜란) 바람처럼 사건을 해결하고 순탄히 경찰로 복직할 수 있을까.

‘웅남이’는 줄거리부터 웃음, 누아르, 가족애를 아우른다. 코미디언 박성광의 정체성과 감독 박성광의 꿈이 어우러진 결과다. 웃기면서 동시에 멋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박성웅을 주인공으로 기용해 코미디를 담당하는 웅남과 누아르를 맡은 정학(박성웅) 등 1인 2역을 부여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박성웅을 염두에 둔 만큼, 98분 동안 그를 열심히 활용한다. 박성웅의 원맨쇼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이경, 최민수, 염혜란, 윤제문, 오달수 등이 힘을 보태며 웃음과 액션 사이를 부단히 오간다. 

‘웅남이’는 콩트 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자연스럽게 웃기는 것보다 확실한 코미디를 지향한다.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슬랩스틱부터 무리수에 가까운 설정과 익살스러운 상황극을 곳곳에 집어넣었다. 쉰 살 박성웅을 극 중 25살로 설정해 주변인이 놀라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말장난을 마구 배치하는 식이다. “진지하게 진지 잡숴”와 같은 대사나 소리를 버럭 내지르는 장면에서는 KBS2 ‘개그콘서트’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과거 도박으로 적발된 동료 코미디언 김준호가 도박꾼을 훈계하는 형사로 특별 출연하거나, 웅남의 특훈 장면에서 영화 ‘취권’을 패러디하는 장면 역시 예능에서 보던 상황극을 연상시킨다. 

영화 ‘웅남이’ 스틸컷. 웅남이문화산업전문회사, CJ CGV

콩트로 힘을 빼다 보니 서사가 쌓일 틈이 없다. 평면화된 캐릭터는 부실한 개연성으로 이어진다. ‘웅남이’는 시종일관 가볍다. 이야기는 B급 정서에 가깝지만, 연출 방식은 과하게 진지하다. 이 같은 격차에서 비롯한 괴리감은 극과 캐릭터를 겉돌게 한다. 이야기를 납득시키기 위해 과거 회상을 자주 보여줘 집중력을 흩트린다. 가벼운 콩트가 주를 이루면서 묵직한 누아르는 설 곳을 잃는다. 코미디 액션 장르를 내세웠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어느 쪽으로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인상을 준다.

배우들은 최선을 다한다. 웅남과 정학 역을 맡은 박성웅은 그동안 보여줬던 이미지를 영화에 부지런히 대입한다. 최선을 다해 망가지다가도 영화 ‘신세계’ 이중구 캐릭터를 그대로 재현한다. 각종 예능과 코미디 영화에서 활약한 이이경도 각고의 노력을 펼친다. 이야기에 개연성이 떨어진 탓에 배우들의 열연이 극과 융화하지 못하는 건 아쉽다. 배우들의 매력도 도드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강현남 역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염혜란이나 윤제문, 최민수 역시 무게감을 잃고 이야기와 함께 부유한다.

다만 박성광의 열정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를 볼수록 그가 가진 신인 연출가로서의 야심과 베테랑 코미디언의 자부심이 읽힌다. 언론시사회 당시 그는 “상업 영화로 데뷔하려면 코미디 장르를 택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각색 및 편집 과정에서 누아르와 코미디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쳤다”고도 했다. 감독 박성광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인다. ‘웅남이’로는 그의 영화 세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유머 코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박성광 표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볼 만하다.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98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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