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폭락’ 사태 주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도주 11개월만에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권 대표가 국내에 송환되면 검찰은 가상화폐의 증권성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권 대표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가 여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업계에서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미국·싱가포르 뛰어든 권도형 송환 경쟁26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몬테네그로 현지 법원은 권 대표와 측근 한모씨에 대해 구금 기간 최장 30일 연장 결정을 내렸다. 싱가포르에 주거지를 둔 외국인으로 도주 우려가 있고, 신원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권 대표가 항소 뜻을 밝히며 송환 시기는 더 늦어질 전망이다.
권 대표는 지난 23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사용,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출국하려다 체포됐다. 법무부는 지난 24일 몬테네그로 당국에 권 대표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권 대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그의 뒤를 쫓아왔다.
뉴욕 남부 연방지방검찰청(SDNY)은 권 대표 체포 직후 그를 투자자 기만·인터넷 뱅킹을 이용한 금융사기·시세 조작·상품 사기·증권 사기 등 8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를 사기 혐의로 제소한 바 있다. 싱가포르 경찰은 권 대표가 800억원대 가상화폐 사기를 저질렀다고 보고 지난달부터 수사 중이다. 몬테네그로 현지에서도 권 대표는 위조문서 소지 혐의 재판, 범죄인 인도 심리 등 총 2가지 사건에 직면한 상태다. 권 대표가 어느 나라로 송환될지는 몬테네그로 당국 판단에 달렸다. 국제법에 따르면 피의자를 체포한 나라가 송환국을 정한다.
가상자산, 증권으로 볼 수 있을까…업계도 촉각
권 대표 송환과 더불어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도 관심을 끈다. 여기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판단이 다르다.
먼저 SEC는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SEC는 증권성 여부를 ‘하위 테스트(Howey Test)’로 판단한다. △돈이 투자되고 △그 돈이 공동의 사업에 쓰이고 투자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으며 △그 이익은 제3자 노력으로 발생될 때 증권으로 본다.
미 규제당국은 스테이블 코인을 포함해 대부분의 암호화폐를 상품이 아닌 증권으로 보고, 이를 SEC에 등록하지 않은 업체를 연방 증권법 등록 사항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하려 하고 있다. SEC가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를 연방법원에 고소한 이유 중 하나도 테라·루나를 ‘증권’으로 등록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국내에서는 금융당국이 TF를 꾸리고 판단 기준을 마련 중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은 ‘내외국인이 발행한 금융투자상품으로서 투자자가 취득과 동시에 지급한 금전 등 외에 어떠한 명목으로든지 추가로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 증권은 다시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증권예탁증권 6가지로 나뉜다. 이 중 가상자산은 어떠한 금융투자상품이 다른 어떠한 증권에도 해당하지 않을 때 검토하는 광범위한 정의를 갖춘 보충적 성격의 증권인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김병연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권오훈 차앤권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지난 2021년 ‘가상자산의 법적 성질-미국과 한국의 증권규제를 중심으로’ 논문을 통해 “타인의 노력 여부, 또는 탈중앙화 여부가 중요하게 검토돼야 한다”면서 “만약 가상자산이 탈중앙화 되지 않고 특정한 주체가 운영하는 블록체인 상에서 동작한다면 그러한 가상자산은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가상자산의 투자자가 취득하는 권리의 내용에 증권성이 있다면 자본시장법에 따라 미등록 증권 신세가 된다. 상당수 알트코인(비트코인·이더리움을 제외한 가상화폐)도 시장에서 퇴출되는 등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송환되면 솜방망이 처벌?
설령 가상화폐가 증권성 인정을 받지 않더라도, 어느 나라에 먼저 송환될지와 관계없이 결국 권 대표는 긴 형량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한국의 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법에 따르면 사기죄를 범한 사람은 그 범죄 행위로 50억원 이상의 재산상 이익을 취했을 시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진다. 미국에서는 70조원 대 폰지 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비상임 회장이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은 전례가 있다. 메이도프 전 회장은 결국 지난 2021년 교도소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이를 비춰봤을 때 미국에서 권 대표가 받을 형량은 100년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에서 무기징역이 안 나온다 하더라도, 재판 뒤 미국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할 것”이라며 “한국 사법당국은 형집행정지한 뒤 미국으로 권 대표를 보내주면 된다. 미국에서 권 대표는 재판 받고 또다시 형을 살 수 있다. 만약 한국에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은 뒤 미국에서 징역 100년형이 선고되면, 남은 70년을 미국에서 살게 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대표는 아주 장시간의 법정 싸움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테라·루나 사태란? 권 대표는 지난 2018년 테라폼랩스를 창업하고 이듬해 알고리즘에 의해 ‘1테라=1달러’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테라와 테라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게끔 설계된 루나를 출시했다. 하지만 테라 예치자에 대한 약 20%에 달하는 과도한 이자 지급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결국 지난해 5월 테라와 루나의 대량 매도가 일시에 발생했다. 차익거래를 통한 가격 유지 기제가 무너지며 테라의 가격은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급락했다. 일주일 만에 암호화폐 시장에서 최소 400억달러(약 52조원)가 증발했다. |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