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산불 현장르포] “정치인들 다녀가는 거 반갑지 않아요”

[강릉 산불 현장르포] “정치인들 다녀가는 거 반갑지 않아요”

기사승인 2023-04-12 18:06:3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진태 강원지사가 12일 산불 피해를 입은 강릉시 저동골길 일대 펜션 및 민가 지역을 찾아 현장을 살펴본 뒤 한 이재민의 하소연을 경청하고 있다. 

- “주말 손님 맞으려 어제 재단장 끝냈는데...”
- 아이스아레나서 100여세대 대피 중
- 산불피해 현장은 폭격 맞은 전쟁터
- 대부분 이재민들 살길 막막해
- 강릉시 ‘특별재난지역’ 선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오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마련된 산불 피해 이재민 임시대피소에 방문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왕 이렇게 불난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라에서 이재민들에게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선거 1년 앞두고 부지런히 정치인들이 다녀가겠지만 사실 별로 반갑지않다. 우리는 그래도 덜하지만 생활능력이 없는 이재민 노인들은 최소한 돌아가실 때까지 나라에서 책임을 져줘야 맞을 것 같다.”면서 이재민 임시대피소인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만난 이명호(64) 씨는 말했다.
12일 오후 강릉시 저동골길의 한 주택 앞 밭에 심어놓은 묘목이 불에 타 회생이 불가능해 보인다.

강릉 산불이 발생한 다음날인 12일 오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는 갈 곳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100여 세대 모여 있었다. 이재민대피소가 꾸려진 11일 오후부터 정치인과 단체장들이 다녀갔지만 이재민들은 크게 반기지도 그들이 약속하는 말들도 못 믿겠다는 분위기이다. 오히려 집이 완전히 전소되어 사라지거나 절반 이상 탄 이재민들은 주민자치대책위원회를 꾸려 상황을 대비할 방침이다. 이번 산불은 강풍이 불어 초기에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날 오전 8시 22분께 발생한 강릉 산불은 8시간 8분만인 오후 4시 30분에 불길이 잡혔다. 오전 한때 순간풍속 초속 30m의 강풍이 불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1시간가량 비가 내리면서 빠른 속도로 진화됐다.
전소된 주택 내부에서 바라본 폐허화된 강릉시 저동마을 전경 

경포호 펜션단지에서 펜션을 운영했던 이종순(72)씨는 “ 갑작스런 산불로 집과 펜션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너져내렸다. 손님을 새로 맞기 위해 큰 돈을 들여 펜션 주변을 새로 단장했다.”면서 “오늘 집을 돌아보니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진다. 노후 대책으로 마련한 집이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폭격을 맞아 마을 전체가 파괴된 것처럼 보이는 강릉시 저동마을 전경

저동에서 펜션을 운영하던 전명환(36) 씨는 “펜션을 아름답게 짓기위해 목재를 많이 사용했는데 알고보니 목재는 화재보험 산정이 별로 안된다고 해서 걱정이다. 대략만 따져도 피해금액이 1억 5천정도 예상된다.”면서 “나라에서 저렴한 금리로 지원 해줘봤자 복구는 거의 불가능하다. 당시 불길이 너무 강해 아무것도 못 건졌고 소방차도 오지않았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나무들도 모두 타 고사목처럼 보인다.

강원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이번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가 소실됐고, 주택 68채, 펜션 26채 등 총 125곳으로부터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이재민 임시대피소를 나와 이번 산불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강릉시 안현동과 저동 일대를 돌아봤다. 한마디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면적은 크지 않았지만 마치 폭격을 맞아 쑥대밭이 되어버린 우크라이나의 어느 마을을 보는 듯 했다.
12일 오후 저동골길에서 만난 이재민 최영주 씨가 불에 타 없어진 자신의 집터에서 결혼 당시 자신이 가져왔던 물건을 찾아내 살펴보고 있다. 최 씨는 “그래도 아이들 학교 보내고 화마가 닥쳐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렇게 차까지 다 타버릴 정도이니 집에서 아무것도 건질게 없네요. 한숨만 나온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저동골길에서 만난 이재민 최영주(44) 씨는 “산불이 저 멀리서 타고 있는 걸 보고 집 주변에 물을 뿌리다 잠시 화장실에 들렸는데 남편이 큰 소리로 당장 도망쳐야 된다 해서 가방과 아이의 약만 들고 급하게 뛰쳐나왔다”라며 “소방차가 한대도 안 와 집이 순식간에 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서 “당장 갈 곳도 없는데 아이들이 너무 걱정된다”고 울먹였다.
강릉 시내에 사는 임만택(사진 좌측) 씨가 강릉시 안현동에 위치한 친척 집을 안타깝게 살펴보고 있다.

저동과 이웃한 안현동에서 만난 임만택(78) 씨는 “6,25 전쟁 때보다 더 심하네요. 처남이 이 곳에서 편의점과 팬션을 운영하는데 한 마디로 처참해서 아무 말이 안나온다”면서 “정부에서 보상이나 제대로 해줘야 할텐데”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재민들이 임시 대피소인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강릉산불 뉴스를 관심있게 바라보고 있다.

이번 강릉산불의 화재 원인은 일단 강풍으로 말미암은 ‘전선 단락’으로 추정된다. 1차 조사 결과 강풍으로 나무가 부러지면서 전선을 단선시켜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관계 기관들의 추가 감식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임시 텐트로 가득한 강릉 아이스아레나 전경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도 강릉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피해 주민이 신속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피해 복구 지원에 만전을 기하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으로 피해 조사를 실시해 복구에 필요한 국비 지원 규모를 산정하고, 신속히 지원할 계획이다.

강릉=곽경근 대기자kkkwak7@kukinews.com· 임형택 기자
곽경근 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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