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결별’을 예고했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입장을 선회하고 국민의힘에 공천권 폐지 등을 요구했다. 전 목사가 당내 세력화로 방향을 전환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전 목사와 선을 긋지 못한 채 지지율 몸살을 앓고 있다.
전 목사는 17일 오전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에서 기자회견문을 통해 “위기에 빠진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방도를 제시하려 한다”며 “전 국민 국민의힘 당원 가입 운동과 공천권 폐지, 당원 중심의 후보 경선이 그것이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는 회견문에서 “‘왜 목사가 정치하느냐’는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오죽하면 목사가 나섰겠느냐”고 여당 지도부를 향해 일갈했다. 당내에서 나오는 자신에 대한 비판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회견문 발표 뒤 단상에 오른 전 목사는 “이를 수용하면 새로운 정당 창당을 잠시 보류하겠다”며 “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반드시 광화문을 중심으로 자유 우파, 기독교, 불교, 천주교를 연대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당신들의 버릇을 고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전 목사는 애초 ‘국민의힘과 결별 선언’을 하기로 했지만 이 같은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입장이 바뀌어 여당을 압박하는 메시지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당황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17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당과 거리를 두는 게 아닌 오히려 관계가 있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니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이 ‘공천권 폐지’ 등을 수용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은 당헌·당규의 사항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요구로 수정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태도는 애매하다는 반응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 참석한 뒤 전 목사와 거리를 두는 발언을 내놓긴 했지만 ‘관계 단절’과 관련해서는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이날 김 대표는 “그 사람(전광훈 목사)은 우리 당원도 아닌데 나중에 얘기하겠다”고 밝혔다. ‘그 사람’으로 지칭함으로써 초반 소극적인 태도와는 달라졌다는 말도 나오지만 확실히 관계 단절을 하겠다고는 밝히지 않아 ‘애매하다’는 반응도 있다.
총선을 1년가량 앞둔 상황에서 ‘중도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제기되자 ‘전 목사 리스크’를 우려하는 이들도 나왔다. 전 목사가 ‘당원 가입’을 유도하고 ‘공천권 폐지’를 주장함으로써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17일 MBC 라디오에 출연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전광훈 개인은 우리 당원도 아니고 전광훈 추천 이중당적자들이 (당에) 있다”며 “이 사람들을 통해 (전 목사가) 우리 전당대회에 개입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전 목사가 계속해서 지도부에 관여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 여론의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전광훈 논란’의 시발점이었던 김재원 최고위원이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의 이유로 꼽히고 있어 당 안팎에서는 전 목사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지율 하락은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 10~14일 전국 유권자 2506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2주 전 대비 3.1%p 하락한 33.9%로 집계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안소현 기자 ashrigh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