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알게된 내 키·몸무게”… 장애인 건강검진 사각지대

“50년만에 알게된 내 키·몸무게”… 장애인 건강검진 사각지대

장애인 건강검진 수검률 39.2%… 비장애인과 9.9%p차
장애인 전문 건강검진기관, 전국 11곳 뿐… 전남은 ‘0곳’
장애인단체 “장애인 건강권 보장 차별… 제도 개선 필요”

기사승인 2023-04-20 06:00:31
‘세계장애인의날 결의대회’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사진=임형택 기자

#A씨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키와 몸무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이용했던 건강검진기관에선 측정이 불가능했다. A씨는 자신의 키와 몸무게를 가늠되는 대로 불러줄 뿐이었다. A씨는 “얼마 전 처음으로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에서 검진을 받으며 내 진짜 키와 몸무게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건강검진기본법’ 제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이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건강을 증진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겐 국가건강검진 진입 장벽이 여전히 높다. 

지난 19일 보건복지부와 국립재활원은 국내 등록 장애인 265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2021년 장애인 건강보건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일반 건강검진 수검률은 2020년 57.9%으로, 비장애인에 비해 9.9%p 낮았다. 중증장애인 건강검진 수검률은 비장애인에 비해 21.7%p 적은 46.1%에 불과했다. 

장애인들이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시설과 장비, 인력을 갖춘 의료기관이 극히 적은 탓이다. 2017년 국립재활원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중증 장애인의 25%가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 X-ray 검사조차 받지 못한 채 건강검진을 마무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시설이나 장비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건강권법이 제정되면서 보건복지부에선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을 지정해 지원하고 있지만, 장애인 건강권을 보장하기엔 갈 길이 멀다.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은 장애 특성을 고려해 국가건강검진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받을 수 있도록 마련한 의료기관을 말한다.

정부는 오는 2024년까지 총 100곳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달성률은 10% 수준에 그쳤다. 현재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은 22곳이지만, 실제로 개소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은 11곳에 불과하다. 지역별로는 △서울 2곳 △부산 2곳 △인천 1곳 △경기 1곳 △강원 1곳 △경북 2곳 △경남 1곳 △제주 1곳만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라남도의 경우 순천의료원이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으로 지정됐는데, 아직 검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에서 지정 기관에 시설 장비비와 중증 장애인 검진 가산비용, 안전 편의 관리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민간 의료기관 입장에선 책정된 예산이 적어 참여에 난색을 표하는 실정이다. 복지부에서 지원하는 시설 장비비 1억1400만원으로 시설 설비를 갖추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지정 기관엔 시설 내 장애특화 건강검진 장비 9종 △휠체어 체중계 △장애특화 신장계 △특수휠체어 △이동식 전동리프트 △영상확대 비디오 △대화용 장치 △점자프린터 △성인기저귀 교환대 △이동형 침대 등이 필수적으로 구비돼야 한다. 또 장애인 의사소통, 이동 편의 등을 위한 인력과 수어통역사 자격을 갖춘 담당자가 각 1명 이상씩 상주해야 한다.

이를 모두 갖추려면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의료기관에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의 지원도 최초 1회 지원에 그쳐 운영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해결책으로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장애친화 건강검진 기관 지정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장애인건강권법 개정안을 통해 공공보건의료기관이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으로 당연 지정하도록 했다. 현재 상임위원회인 복지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전국 86곳의 의료기관이 추가 지정돼 장애인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법안엔 지정 첫해 예산 지원 후에도 시설 개소 시 중증장애인 1명당 검진 가산수가 5만350원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장애인권 단체에선 그간 장애인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며, 검진기관 지정 방식을 의무제로 바꾸는 등의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일반 의료기관에서의 검진 시설은 장애인 접근이 어려워 검진을 거부당하거나 검진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 비장애인에 비해 검진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질병에 대한 위험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장애인 건강권 보장 측면에서 차별을 받고 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에서 관련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건강검진비 지원 필요성도 강조된다. 19일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21 장애인삶 패널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건강·관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검진비 지원’(49.7%)이었다. 

김 사무국장은 “직장인들은 건강검진을 무료로 주기적으로 받지만, 장애인들의 경우 취업이 어렵다보니 더 취약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장애인 유병률이 높은 만큼 비용 부담 없이 국가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욕구가 높은 것 같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부는 장애인 의료 접근성 보장을 늘리기 위해 예산 지원 등을 더 늘리겠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8개 기관을 추가 공모하고 있고,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면 100개 기관 지정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에 대한 지원을 늘릴 수 있도록 예산당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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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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