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새의 봄, 영양창고 ‘관곡지’

저어새의 봄, 영양창고 ‘관곡지’

- 시흥 찾아온 진객위해 먹이 제공
- 시흥 연꽃테마파크, 가장 가까이서 저어새 관찰 가능

기사승인 2023-04-27 06:00:05
"절대 양보 못해"
지난 21일 경기도 시흥시 관곡지 앞 연밭에서 미꾸라지를 잡은 저어새가 먹이를 빼앗으려는 왜가리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 멸종 위기종 ‘저어새’ 위해 서해안 보존 중요
- 시민들 관공서에 저어새 보호위해 관심 요구
 
“아무리 품위 있는 새들도 먹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네요”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관곡지 앞의 연밭에 저어새 20여마리와 노랑부리저어새, 왜가리, 백로 등이 치열하게 먹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6년 째 이곳에서 저어새가 즐겨먹는 미꾸라지를 공급하고 있는 사진가 양진영(72·시흥) 씨가 대형 비닐봉투에 든 미꾸라지 12kg을 그릇에 담아 뿌려주자 인근 연밭 주변에 몰려있던 새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저어새들이 먹이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저어새의 먹이터는 주로 갯벌이다. 깊이 20cm 이내 낮은 개펄에 물이 차면 망둥이, 칠게, 새우, 갯가재 등을 부리를 저어서 사냥한다. 민물에서는 주로 미꾸라지를 잡아 먹는다.

저어새들은 연신 자신의 넓적하고 긴부리를 저어가며 물속의 미꾸라지를 잡아낸다. 곁에 있던 동료들은 친구가 잡은 먹이를 탐해 빼앗으려 덤비기도 한다. 더구다나 흐린 물속의 물고기 사냥이 어려운 왜가리나 백로는 저어새들의 공격에 놀라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미꾸라지를 잽싸게 낚아챈다. 저어새 덕분에 물고기 사냥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이들 역시 저어새가 잡아 올린 미꾸라지를 빼앗기에 혈안이다. 여기저기서 뺏으려는 자와 빼앗기자 않으려는 자의 쫒고 쫒기는 추격전이 볼만하다. 

시흥시민이자 사진가인 양진영 씨가 저어새에게 미꾸라지 먹이를 제공하고 있다.

시흥 연꽃테마파크에는 매년 20-30마리 정도의 저어새가 찾아와 먹이활동을 한다. 매년 이곳을 찾는 저어새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올해는 40마리 가까운 저어새가 찾아왔다. 흐린 물속에서는 저어새에 비해 사냥 능력이 떨어지는 왜가리가 저어새가 잡은 미꾸라지를 빼앗기 위해 쫒아가고 있다. (사진=양진영)

시흥연꽃테마파크의 한 연밭에서 저어새들이 먹이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사진가들이 촬영하고 있다. 주걱 모양의 부리가 특징인 저어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멸종위기(EN)로 등록된 여름 철새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대만, 필리핀 등 동아시아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 장면들을 놓치지않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사진작가들의 셔터소리가 요란하다.  양진영 작가는 “세계적으로 귀한 손님이 이곳을 잊지않고 찾아오는데 잘 돌봐야지요. 영양공급이 충분해야 새끼들도 건강하게 품어서 잘 키울거잖아요”라며 “매년 이곳을 찾는 저어새 숫자는 늘어가는데 미꾸라지를 넉넉히 공급해주지 못해 미안하죠. 시나 관심있는 단체에서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먹이활동을 마친 저어새 무리가 수선화가 비친 물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 동안 먹이활동에 분주했던 저어새 무리는 어느 정도 배가 부른지 삼삼오오 흩어져 따사로운 오후 봄 햇살아래 얼굴을 날개 사이에 파묻고 휴식을 취한다. 일부는 부지런히 서로의 목을 부리로 다듬고 정리해 준다. 저어새는 워낙 부리가 길어서 자신의 목 주변을 다듬을 수가 없다. 번식철, 목 주변을 다듬는 모습은 암수의 애정 표시이기도 하다. 
따사로운 봄햇살 아래에서 날개깃을 다듬는 저어새 자태가 우아하다.

또 다른 저어새들은 연밭 둔덕을 여유롭게 산책하기도 한다. 아직 고향으로 떠나지 않은 겨울철새 노랑부리저어새가 여름철새인 저어새와 나란히 걷는 모습도 관찰되었다.
서정화(60) 하남시환경교육센터장은 “봄과 가을, 저어새와 노랑부리저어새처럼 겨울철새와 여름철새가 교차하는 시기에는 두 종류의 새들을 함께 볼 수가 있다”면서 “기후 변화가 원인이어서 함께 볼 수 있는 시기가 늘어나고 있는지는 좀 더 관찰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여름철새인 저어새와 겨울철새가 노랑부리저어새가 나란히 걷고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먹이활동을 위해 관곡지에 날아오는 대부분의 저어새들은 인근 인천시 남동구 남동유수지와 오이도 황새바위에서 번식 중인 새들의 일부이다.
밥 푸는 주걱 모양의 부리가 특징인 저어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멸종위기(EN)로 등록된 여름 철새이다. 검은부리로 물 속을 휘저어 먹잇감을 찾는 저어새는 겨울철에는 흰색 깃털로 치장을 하고 여름철에는 가슴에 갈색 띠를 두르며 한껏 멋을 부린다. 
시흥 연꽃테마파크는 세계적 희귀조인 저어새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전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의 특정지역에만 서식하는 국제적인 희귀조로 홍콩 대만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 월동한다. 일부 개체는 제주도에서 겨울을 보내기도 한다. 각기 다른 곳에서 겨울을 보낸 저어새들은 3월 하순부터 서해 경기만 일원의 습지역에 모여든다. 각기 다른 월동지를 지닌 이들 모두가 이곳으로 모이는 이유는 종족 번식 때문이다. 전 세계에 서식하는 저어새의 약 80%가 우리나라 서해안 일대에서 번식하고 있다.
저어새의 부리 색깔은 짙은 검은 색에다 주름이 있다. 머리에는 장식깃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번식기에는 목 주위에 황금색 띠가 생긴다.

저어새 개체 수는 동아시아 여러 국가의 보호 노력에 힘쓴 덕분에 1994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4년 351개체에 불과했으나, 2021년 1월 기준 5222개체로 증가했다. 저어새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의 성과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성과다. 꾸준한 저어새 보전을 위해서는 월동지를 포함해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을 보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서정화 하남시환경교육센터장은 “저어새 보전을 위해서 월동지를 포함해 관련 국가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번식지가 집중된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을 잘 보전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곡지를 배경으로 저어새와 백로들이 휴식을 하고 있다.

관곡지를 배경으로 저어새의 우아한 모습을 카메라 담던 생태사진가 유옥순(73·시흥) 씨는 “시흥은 연꽃테마단지와 함께 세계적으로 귀한 저어새와 노랑부리저어새가 찾아오는 곳이다. 먹이도 공급하고 귀한 손님들이 사철 쉬면서 먹이활동을 할 수 있게 무논도 만들어주고 하면 좋겠다”면서 “시흥시에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텐데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저어새는 긴 주걱 모양의 부리가 큰 특징으로 부리를 좌우로 저으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저어새가 가장 많이 번식하는 지역은 우리나라 서해안으로 전 세계 저어새 무리의 80% 이상이 이 지역에서 번식한다.

시흥 연꽃테마파크는 우리나라 연꽃 시배지인 관곡지(官谷池)가 갖는 상징성과 역사성을 기리기 위하여 관곡지 주변과 갯골생태공원, 물왕저수지 주변 18ha의 논에 연꽃테마파크를 조성했다. 5월 초 연밭에 연 줄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저어새들도 먹이활동이 어려워 이곳을 찾지 않는다. 

저어새는 영어 이름도 ‘black-faced spoonbill’이라 불리는데 ‘검은색 얼굴을 가진 숟가락 부리’라는 뜻이다.

저어새는 우리나라에 4~5월에 도래하여 무인도에서 번식한 뒤, 8월부터 10월까지 서해안 갯벌에서 가을을 보낸다. 서서히 추워지기 시작하면 월동지인 대만, 홍콩 등으로 다시 날아간다.

시흥=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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