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해질 수 있다면 가격은 상관없어요. 비싼 약일수록 효과가 좋고 부작용도 적지 않을까요?”
31세 임지은씨(가명·여)는 최근 한 달에 한 번 피부과를 찾는다. ‘살 빠지는 주사’ 처방을 받기 위해서다. 진료부터 처방까지 단 2~3분이면 충분한데, 약값은 매번 20~30만원에 달한다. 병원은 늘 젊은 여성들로 붐빈다. 비만치료제를 받으러 오는 단골 고객들이 많다. 실제 비만 환자는 드물다.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일반인이 대부분이다.
최근 발전을 거듭하는 비만치료제. 기존보다 적은 용량, 짧은 주기로 복용해도 효과는 훨씬 더 좋다는 치료제들이 시장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흔하게 처방된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벗어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식욕을 줄이는 방식의 ‘GLP-1 치료제’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효과성이나 안전성에서 마약성 식욕억제제보다 월등히 좋은 임상 결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비만치료 신약 ‘마운자로’(성분명 티제파타이드)를 두고 과체중 성인 환자 임상 3상 결과, 주 1회 주사만으로 최대 15kg까지 감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티드) 역시 68주간 주 1회 투여로 평균 15%의 감량 효과를 보였다.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는 노보노디스크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티드)의 경우 1일 1회 주사해 약 10% 안팎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발표가 나온 바 있다.
다만 비만치료제는 대부분 비급여로 처방돼 가격 부담이 크다. 마운자로나 위고비는 미국 기준 한 달치 처방에 100만~150만원가량 드는 것으로 알려진다. 삭센다는 국내 기준 한 달에 30~50만원 정도인데, 오는 5월부터 15% 가격 인상이 예고됐다.
가격이 비싸도 비만치료제를 찾는 사람은 많다. 비만 환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적정 체중의 사람들에게도 무분별하게 처방된다. 비약물 치료에 실패한 체질량지수 25 이상 환자에 한해 처방한다는 기준은 말뿐이다.
‘확실히 살이 빠진다’는 임상 결과를 들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처방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해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지난 2019년~2022년 사이 삭센다 열풍이 불었던 시기에는 강남 지역 성형외과, 피부과 등에서 처방 없는 불법 판매는 물론 온라인 불법거래까지 이뤄졌다.
마운자로에 대한 관심도 벌써부터 뜨겁다. 다이어트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언제쯤 들어올까요’, ‘가격만 괜찮으면 한번 써보고 싶다’, ‘식단 하기 힘든데 주사 한 번이면 살 빠진다던데 직구 가능한 곳 있을까요’ 등의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처방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 마약류 식욕억제제보다는 안전할 수 있어도 저혈당, 췌장염 등 부작용 우려는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이정아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체중감량을 위해 쓰는 약들 대다수는 포만감을 증가시키고, 식욕을 떨어뜨려 체중감소를 유도하는 것으로 정상 체중인 사람들이 식사를 적게 하기 위해서 복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드물게 췌장염, 담낭결석, 저혈당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생활습관 변화 없이 약물치료만으로 체중을 감량할 경우 약물 중단 뒤에는 다시 체중이 증가할 수 있다”면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해야 체중감소 후에도 감소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혜준 중앙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비만약도 다른 약들처럼 내성, 의존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쓰다보면 처음 치료 때보다 효과가 점차 떨어지는데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용량을 늘려도 살이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살이 찌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비만치료제는 과체중,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나온 약으로 일반 환자에게는 효과가 크지 않다”며 “약만 먹어서 빠지는 살은 없다. 전문의의 체계적인 진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비만치료제는 미용 목적으로 판단해 비급여로 처방되고 있다. 실제로 비만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 많아 약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며 “정부가 이를 분별해 적절한 처방과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약물이 아닌 평소 생활습관으로 건강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비만관리종합대책이 구비되면 좋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