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 장애아동 부모인 한모(35)씨는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애석한 마음을 드러냈다. 어린이날인 5일 전국적으로 강풍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예보되며 실내 놀이시설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장애아동 부모들은 발길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고민이 깊다.
실내 놀이시설 중 장애아동이 갈 곳은 마땅치 않다. 아름다운재단과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가 지난 1월 발간한 ‘무장애 실내놀이터 매뉴얼’에 따르면 공공형 실내놀이터 10곳 중 휠체어를 타고 입장할 수 있는 곳은 4곳뿐이었다. 손이 불편하거나 힘이 약한 아이가 손잡이, 줄 등을 이용해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를 설치한 곳은 1곳도 없었다.
시설 이용이 힘든 것 외에 차별적인 시선도 걸림돌이다. 발달장애 아동 부모 백선영(41)씨는 “아이가 미끄럼틀 앞에서 내려가지 않고 주저앉아 버린 적이 있다. 장애가 있다며 양해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모들이 ‘빨리 데리고 내려가라’며 윽박질렀다”고 토로했다. 백씨는 “발달장애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받기 어렵다 보니 시설 이용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장애아동은 ‘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구촌 아동 인권법’이라 불리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는 ‘아동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해 문화생활과 예술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제정을 추진 중인 ‘아동기본법’에도 아동의 ‘놀 권리’를 명시할 계획이다.
모든 어린이의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실내·외 놀이기구의 시설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다수 놀이터가 입구에 단차와 턱이 있는 등 비장애 어린이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현재 장애 유무나 정도와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가 놀 수 있는 ‘통합놀이터’가 전국 곳곳에 설치되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마련된 경사로나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회전 놀이시설 등이 설치돼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 모두 뛰놀 수 있게 설계됐다.
특히 등받이와 안전벨트가 있는 그네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증장애 아동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서울시 광진구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의 무장애통합놀이터 ‘꿈틀꿈틀놀이터’의 인기 있는 놀이시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장애아동 뿐 아니라 비장애아동도 안전하게 놀이시설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보호자도 안심이 되는 시설이다. 4일 꿈틀꿈틀놀이터에서 그네에 아이를 태우던 이모(33)씨는 “아이가 항상 그네를 세게 밀어달라고 하는데 안전장치가 없어 미끄러질까봐 항상 조마조마했다”며 “이 그네엔 안전벨트가 있어 안심하고 태울 수 있어 좋다. 이런 놀이시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거점형 놀이터’ 등 장애아동이 함께 이용하는 통합놀이터가 준공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3월 기준 전국 놀이터 7만9000여곳 중 통합 놀이터는 23곳에 불과하다.
장애아동용 놀이기구 관련 법안이 전무한 탓이다. 현재 어린이의 놀이시설에 관한 법안은 행정안전부의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유일하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1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장애 및 비장애 어린이 모두 불편 없이 어린이 놀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김남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장애아동의 놀 권리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돼 있지만, 구체적으로 정책이 뒷받침되기 위해선 놀이터의 설치와 안전을 담당하는 행안부의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 역할이 구체적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형 실내놀이터 조성이 늘고 있는 만큼, 장애아동의 이용을 고려해 놀이시설을 설계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김 국장은 “공공형 실내놀이터조차 장애아동의 이용이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체장애, 발달장애 등 중증장애아동과 장애인 보호자의 이용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실외놀이터와 마찬가지로 실내놀이터도 장애·비장애아동이 함께 놀고 장애인 보호자가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구조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