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 불법 복제 요구하는 대학교수

출판사에 불법 복제 요구하는 대학교수

[정윤희의 문화민주주의 (11)]
창작자 존중하는 문화 풍토와 실효성 있는 저작권법으로 개정해야

기사승인 2023-06-02 06:00:02
최근 ‘세계 경제를 이끈 경제사상 강의’를 펴낸 출판사 편집자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교수는 어느 대학에 있으며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소개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음 학기에 경제학사 관련한 강의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세계 경제를 이끈 경제사상 강의’를 수업교재로 채택하려고 한다. 교재로 채택되면 몇십 권이 구매될 예정이다. 수업교재로 채택하는 조건으로 출판사는 책을 1부 기증해 줄 것, 이 책에 들어간 표와 그림자료 또는 전자책에 들어 있는 표와 그림을 따로 캡처해서 보내달라.”
저작권 개념조차 없는 대학 교수의 '갑질'. 저작권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 이미지=픽사베이

출판사 편집자는 “저자가 만든 표와 그림을 출판사가 일방적으로 드릴 수 없다. 책에 있는 표와 그림을 그대로 스캔해서 사용하면 저작권 문제가 발생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다른 출판사는 책을 채택해달라고 PPT까지 다 만들어서 보내주는 경우가 많은데 뭘 모르나 보다.”고 출판사 편집자를 오히려 다그쳤다.

출판사 편집자는 “책을 쓴 저자에게 물어 볼테니 어느 대학에 계시고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는데, 교수는 “그런 것을 왜 물어보느냐”는 식으로 말하면서 대학은 말해주지 않고 이름만 밝혔다.

책 한 권을 내려면 저자, 출판사, 디자이너 등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간다. 저자는 공부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원고를 쓰고,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저자가 만든 표와 그림도 창작물이다. 표와 그림을 가독성 있게 디자인하는 편집디자이너의 노력도 들어간다. 저자와 출판사 입장에서는 책이 나오면 내 자식같이 소중하다.

저작권법에서는 불법 복제·배포 등으로 저작권을 침해한 자에 대해서는 민사상 및 형사상의 고소, 손해배상 청구 등의 법적 조치를 진행할 수 있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되어 있다. 이렇게 법이 있음에도 저작권 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B교수처럼 저작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례가 발생한다.

대학가의 불법복제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오래된 관행이다. 특히 학술도서 분야는 불법복제 행태가 심각하다.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와 이용자 모두를 위한 법이지만, 저작권자에게 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창작자 존중하는 문화풍토와 실효성 있는 저작권법으로 개정해야 한다. 초중고 공교육 현장, 대학가, 사설학원 등에서 출판물의 불법복제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저작권보호 교육 및 저작권법 개정, 이용자들이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저작물을 이용하도록 저작권 이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윤희
책문화생태학자로서 국내에서 책문화생태계 담론 생산과 확산에 기여해 왔으며, 사회적기업 책문화네트워크 대표이다. 언론매체 전공으로 언론학 석사학위를,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출판저널> 발행인 겸 편집인,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이사, 경기도 도서관정보서비스위원회 위원, 전라북도 도서관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협회 부설 한국미디어정책연구소장 및 한국잡지저작권위탁관리소장,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대변인, 경기도당 문화민주주의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튜브 〈정윤희의 책문화TV〉를 진행하고 있다. 제6기 대통령 소속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 건국대에서 겸임교수를 지냈다. 《문화민주주의 실천과 가능성》 《책문화생태론》 《도서관은 어떻게 우리의 일상이 되는가》 《책문화생태계의 현재와 미래》 등을 썼다.

unigood7311@hanmail.net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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