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밀렸다, 일상이 흔들렸다

월급이 밀렸다, 일상이 흔들렸다

기사승인 2023-06-05 06:05:01
서울 강남구 신사동 우쥬록스 사무실 내부. 우쥬록스 홈페이지 캡처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우쥬록스에서 근무하는 A씨에게 지난 3월10일은 기막힌 하루였다. 2월분 급여 지급을 일주일 미룬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날은 월급날이었다. 평소라면 ‘지름신’과 즐겁게 줄다리기할 시간에 A씨의 일상은 흔들렸다. 회사 측은 약속한 3월17일이 되자 돌연 입장을 바꿔 ‘3월 말에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황당한 상황은 4월에도 되풀이됐다. 월급날이 되면 ‘일주일만 기다려달라’ 했고, 일주일 후엔 ‘월말에 주겠다’고 했다. 2일 서울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A씨는 “생활비 문제도 크지만, 회사가 체납한 4대 보험도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우쥬록스의 임금 체불이 석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직원들이 생계난을 겪고 있다. 우쥬록스는 2016년 문을 연 회사. 유튜브 등 온라인에 유통할 콘텐츠를 제작하고, 지석진·이현우·오만석 등 여러 연예인의 활동을 관리한다. 지난 4월 우쥬록스가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급여 일부가 지급됐으나 직원들은 여전히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아직 받지 못한 월급이 남은 데다, 지급 시기 또한 불투명해서다. 회사로부터 광고 수익금 등 9억원을 받지 못한 배우 송지효는 지난달 우쥬록스 전 대표 박모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횡령)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A씨는 이번 임금 미지급 사태가 “주먹구구식”으로 흘러간다고 지적했다. “급여 지급이 늦어진다는 소식을 급여일 당일 오후가 돼서야 알렸다. 단 며칠이라도 미리 말해줬더라면 생활비 등을 융통할 계획이라도 세웠을 텐데…. 해당 공지를 전할 때도 사내 인트라넷 같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것이 아니라 상급자가 구두로 전했다. 심지어 상급자들마저 회사 자금 상황이나 급여 지급 계획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해 혼란이 컸다. 임원들은 입을 닫고 있다. 직원들에게 직접 사과하거나 회사 사정을 제대로 설명한 임원이 단 한 명도 없다.”

우쥬록스 전 대표 박모씨를 횡령 혐의로 고발한 배우 송지효.   사진=박효상 기자

가장 큰 문제는 직원마다 밀린 월급을 받은 시기와 금액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부 직원은 회사가 약속한 3월17일에 2월 월급을 받은 반면, 2월 월급을 두 달 넘게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급여 담당자에게 ‘지급 순서를 무슨 기준으로 정한 것이냐’고 문의해도 ‘상급자에게 물어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회사를 떠난 직원들 가운데서도 퇴직금을 받은 직원과 받지 못한 직원이 나뉘었다. A씨는 이런 상황을 “각자도생”이라고 표현했다. “누가 몇 개월 치 월급을 받았다는 것을 알음알음 파악할 뿐”이라며 “직원들이 단체 행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뜻을 모은 몇몇 직원은 고용노동청에 임금 체불을 신고한 상태다.

월급이 밀리니 당장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부터 막막했다. A씨는 “직원들 얘기를 들으니 다들 기본적으로 적금을 깨고 비상금을 털었다. 사회초년생인 직원들은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대출을 받은 직원도 있다. 매니저들은 급여를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개인카드로 선결제한 진행비도 돌려받지 못해 송지호·지석진 등 담당 연예인이 사비를 털어 지원했다. A씨는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회사 사옥을 빼서라도 직원 월급부터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한다”면서 “회사는 밀린 월급을 이달 10일까지 주겠다고 했으나 믿을 수 있는 약속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언론을 통해 “소속 연예인과 직원, 함께 일한 관계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으나, 정작 직원들에게 직접 사과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A씨는 “이직을 준비하고 있으나 임금 체불 문제가 신경 쓰여 어느 것에도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수억원 단위의 연예인 미정산금에 비하면 직원들이 받지 못한 월급은 금액이 적어 공론화가 어려울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A씨가 인터뷰에 나선 것은 생계와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동료와 후배들 때문이다. A씨는 “회사 사정을 알 방법이 거의 없다. 회사가 이달 말 투자금을 받는다는 소식도 언론 보도로 처음 알았다”며 “단체 문자를 보내도 좋으니, 회사에서 임금 체불 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행동을 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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