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은마’와 함께 서울 대단지 아파트 상징이자, 재건축 시장 바로미터 역할을 해온 잠실주공5단지가 신속통합기획 노선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재건축 조합이 최근 자치구에 동의서를 제출했다. 신통기획이 확정되면 지지부진한 사업에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최대 70층까지 층수를 높일 수 있고 사업 기간도 줄일 수 있다. 다만 재건축이 10년째 지연되다보니 주민 인내심도 한계에 달한 모양새다. 심지어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도 적지 않다.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정비조합은 지난달 송파구에 신통기획 주민 동의서를 제출했다. 구는 동의서를 근거로 내부협의를 거친 뒤 심의를 위해 서울시로 이관할 예정이다. 송파구 관계자는 “조합에서 동의서를 제출했다”라며 “부서 협의를 한 다음 서울시에 자문을 신청하는 기간까지 3주에서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통기획은 정비계획 수립단계에서 서울시가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을 이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신속한 사업추진을 지원하는 공공지원계획이다. 신통기획이 확정되면 이곳엔 초고층 마천루가 들어설 전망이다. 한강변 아파트는 15층에서 20층으로, 잠실역세권 아파트는 50층에서 최대 60~70층으로 바뀐다.
부동산 관계자는 “5단지가 국내에서 가장 넓은 토지를 가지고 있고 추진 속도도 빠르다”며 “25평부터 100평(대 아파트를) 지을 텐데, 그 중에서 40평을 무상으로 받으면 평당 1억4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매매가는 50억~60억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잠실주공5단지는 올해로 45년 된 구축아파트다. 대한주택공사가 지은 구내 첫 고층아파트(15층)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2013년 재건축 조합이 설립됐지만 10년째 사업시행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부침이 심했다. 조합장이 뇌물혐의로 구속되는가 하면 박원순 전 시장과의 갈등도 있었다. 박 전 시장은 조합이 아닌 공공주도로 사업 추진을 강행해 반발을 샀다. 재건축국제설계공모를 최초로 실시한 아파트도 잠실주공 5단지다. 단지 내 초등학교 이전 문제로도 한 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건물은 그 사이 금이 가고 녹물이 나올 만큼 노후화했다. 5단지 주민들은 그래도 재건축 기대 하나만 붙들고 긴 세월을 버텼다. 그 사이 1~4단지는 신축으로 새 단장했다.
재건축만 믿고 9년 전 5단지로 이사했다는 주민(66)은 “조금은 후회 한다”고 했다. 집을 팔아 자녀 결혼 시키고, 노후자금으로 쓰려던 계획이 다 흐트러져서다. 주변 환경 대비 건물이 워낙 낡다보니 시세도 나쁘다. 2단지 리센츠 30평대 아파트 전세가가 10억 원이 넘는데, 5단지 36평 전세는 5억이 채 안 된다. 그래서 젊은 세입자가 많고, 소유주는 7,80대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그는 “수도꼭지에 필터를 달고 정수기로 한 번 더 걸러서 물을 마셔야 할 정도다. 외벽도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현관도 좁다”며 “살기 엄청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신통기획에 관해선 “층수 올라가는 대신에 건폐율이 떨어져서 더 쾌적해질 수 있다”며 “고층화가 차라리 낫다”라며 “사업이 빨리 진행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을 불신하는 시선도 있다. 한강변 초고층·더 넓어진 동간 간격 확보 등을 반영한 설계변경을 거쳐 사업을 다시 추진하면 입주까지 더 오래 지체될 수 있는 부담 때문이다.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도 상당수다.
자녀와 18년째 5단지에 살고 있다는 주민은 “재건축은 찬성이지만 신통기획은 잘 모르겠다. 건물이 높아진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닐 것”이라며 “높게 지으면 짓는데 더 오래 걸리고 주변에서 일조권 침해로 소송이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단지 내에도 갈등이 많아서 빠른 시일에 재건축은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 단지 관리인도 “재건축 얘기를 잘못 꺼냈다가 해고된 경우도 있어서 말조심하는 편”이라며 “재건축파와 반대파끼리 다툼이 많아서 다들 예민하다”고 전했다. 이어 “5단지 아파트 재건축은 리센츠(2단지)와 달리 땅이 콘크리트라 파기 어려워서 재건축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송금종⋅유민지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