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약, 쓰레기봉투에 버리죠”…방치되는 ‘오염 유발’ 폐의약품

“남은 약, 쓰레기봉투에 버리죠”…방치되는 ‘오염 유발’ 폐의약품

약국·보건소 수거함 모른 채 버려지는 폐의약품
권고사항 그쳐 수거 거부하는 약국들도 늘어
유해폐기물 분류…토양·수질 오염 우려
정부, ‘집배원 수거 사업’ 확대 계획

기사승인 2023-06-11 06:00:02
폐의약품 수거함.   사진=박선혜 기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남았거나 유효기간이 지나 못 먹게 된 폐의약품을 모아서 처리하는 ‘폐의약품 수거함’이 지자체마다 설치돼 운영되고 있지만, 이용이 저조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약사와 환경운동가들은 약이 한 순간에 독이 되고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대책 마련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폐의약품은 유효기간이 경과·임박한 약 또는 변질되거나 변질이 의심되는 약,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 약을 일컫는다. 의약품은 땅에 묻거나 하수구에 배출하면 토양, 수질 오염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약국, 보건소 등에 마련한 수거함에 모아 한꺼번에 소각 처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수거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폐의약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사람도 많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정석(29) 씨는 “폐의약품은 약국에 가져다주면 알아서 처리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라며 “수거함이 따로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IT 회사에서 근무하는 김민규(28) 씨는 “폐의약품을 약국에서 받아준다는 것도, 수거함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사실”이라며 “그동안 그냥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고 했다.

현재는 폐의약품을 받지 않는 약국도 늘고 있다. 약국의 폐의약품 수거는 권고사항일 뿐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시약사회는 폐의약품 분류·처리까지 도맡아 업무가 과중되고, 지자체의 수거가 더디다며 수거 업무에서 손을 뗐다. 

서울 도봉구에 거주 중인 김재은(27) 씨는 “폐의약품을 약국에 가져갔는데 ‘우리는 받지 않는다’며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있다”며 “어떤 약국이 받고 받지 않는지 알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도 했고, 수거함을 찾아가 버리는 일도 사실 번거롭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서울연구원의 ‘생활계 유해 폐기물 관리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가루약을 폐의약품 수거함에 분리 배출한 시민은 16.9%에 불과했다. 물약은 12.6%, 연고·파스류는 13.1%, 알약은 22.6%에 그쳤다.

서울 시민 절반가량은 폐의약품을 종량제봉투에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고·파스류를 종량제봉투에 버린 시민이 46.5%에 달했고, 알약을 종량제봉투에 담아 처리한 경우도 43.2%였다. 시민 16.1%는 물약을 싱크대 또는 변기에 흘려보낸다고 답했다.

환경운동가들은 폐의약품이 폐농약, 수은이 함유된 폐기물 등과 함께 유해폐기물로 분류되는 만큼 토양이나 수질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역 환경단체 관계자는 “폐의약품을 종량제봉투에 버리게 되면 그대로 땅에 매립되는데, 빗물이 스며들면 약이 녹아서 땅에 흡수되고 하천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며 “폐의약품은 태우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약사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폐의약품 수거함 활성화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행정복지센터나 보건소 등 지자체 관공서에 설치된 폐의약품 수거함은 관공서가 문을 닫으면 이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아파트 등 주민 생활공간마다 수거함을 설치해 시민들이 간편하게 언제 어느 때라도 폐의약품을 버릴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요즘 화두로 떠오른 마약류 관리 차원에서도 폐의약품 수거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약물 중 마약류가 많은데 우연히 버려진 마약류 약물이 유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약사회 관계자는 “말기 암환자의 경우 고통이 심해서 마약류 약물이 자주 처방된다. 6개월 치를 처방해줬는데 환자가 혹여 사망한 뒤 남은 약물을 처분할 때 봉투 같은 데 담아 그냥 버리면 누군가가 입수할 수 있다”면서 “약물이 부적절하게 사용되거나 불법으로 거래되면 이 또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정부는 폐의약품 수거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 모범사례 소개·홍보를 전개하고, 지역별 우체국과 협력하는 등 다각도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상훈 환경부 생활폐기물과장은 “지자체별로 폐의약품 수거 모범사례를 조사해 홍보하고 있다”면서 “세종시의 경우 지역 우체국과 협력해 우체국 집배원이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사업을 시범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조만간 서울시 우체국과도 협약을 맺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라며 “현재 올해 예산 사용을 심사하고 있는데, 예산 분야 국민제안 중에서 ‘폐의약품 수거함 보급을 확대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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