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국교가 국민의 70%가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는 조사결과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대로 무척 종교적이다.
새해 첫날에는 한해를 잘 보낼수 있기를 기원하러 신사를 간다. 새 차를 사도 신사를 가서 기도한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세일 행사를 감사제(感謝祭) 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국인인 내가 보기엔 이런 광경이 종교적이지만, 일본인들은 자연스런 명절 관습이나 전통으로 여기는 듯 하다.
일본인들의 물건에 대한 독특한 가치관
또 하나 독특한 일본의 광경은 사소한 물건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이다.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중인 일본의 축구선수 미우라 카즈가 축구화를 아껴 신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메이저리거였던 스즈키 이치로는 야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 초등학생의 질문에 “야구배트나 글러브등을 소중히 다루는것이 먼저“라고 대답한 일화도 있다. 일본의 중고물품 매장인 북오프에 가면 마치 새 제품처럼 아껴 보관해온 책이나 물건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예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중고로 팔리는 물건도 적지 않다.
“물건을 소중히 하는 것“ 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인의 태도는 유년기부터 수많은 사물과 자연을 신으로 모셔온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성행중인 구독서비스들
이런 일본인들의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서브스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구독서비스(Subscription)를 일컫는 일본식 영어였다. 신문이나 잡지 정도를 연상하던 말인 정기 구독이 요즘에는 음악이나 동영상을 거쳐 더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캡슐 커피나 밀키트 등 식료품부터 라멘 이나 이자카야 등을 구독기간동안 무제한 1일1회 또는 무제한으로 이용할수 있는 구독 서비스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1500~3000엔 정도를 내면 한달 동안 무제한으로 마실수 있는 커피 서브스크도 등장했다. 심지어 한달 6800엔에 명품 가방을 빌릴 수 있는 서브스크도 있다.
어지간한 것들은 구독 서비스를 찾을 수 있다. 도요타 자동차에서 내놓은 자동차 구독 서비스 킨토(kinto)에는 높은 유지 비용으로 차 구입에 무관심했던 20~30대 젊은층이 몰려 화제가 되었다. 술, 향수, 책가방에 옷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있고 심지어 전동칫솔 구독도 등장했다. 어느 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구독 서비스 시장 규모는 지난 해 이미 1조엔을 넘어섰고 내년이면 1.2조엔에 이른다고 한다.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정령이 깃든 듯 온갖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본인들이 물건의 소유보다 체험이나 이용에 더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참 낯설다.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이용하는 간소한 생활 스타일이 새롭게 부각되는 데에는 오랜 경제난과 정체된 수입 때문에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도 소유할 수 없게 된 이유도 있어 보인다.
김동운
1978년 서울출생. 일본계 모터싸이클 회사의 한국지점 입사를 계기로2008년 일본으로 넘어와 글로벌 IT기업의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하며 한일 양국에 한 발씩 걸친 경계인으로 살고 있다. 현재거주지는 시노노메(東雲). 김동운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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