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사망하거나 유기된 출생 미신고 아동의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냉장고 영아 유기’ ‘가족 텃밭에 암매장’ 등 자극적인 제목의 사건들이 매일 보도된다. 다른 한 편에선 저출생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출산을 독려하는 정책이 쏟아진다. 부모들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사건들이다. 이미 낳은 아이를 잘 키우도록 독려하는 것 역시 지금 필요한 저출생 정책 중 하나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는 미혼모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쉽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가 바라보는 미혼모 정책과 시스템의 현재다. 기계적인 기준만 남고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아 괴리감이 커졌다. 비현실적인 수급 기준이나 원가정보다 입양을 권하는 시스템도 문제지만, 탈수급이 두려워 취업을 꺼리는 모순된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미혼모들에겐 경제적 불안이 가장 무섭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기초생활수급 제도에 들어가면 나오기 쉽지 않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며 “수급에서 떨어질 것이 두려워 엄마들이 파트 타임처럼 불안정한 직장을 갖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아이가 자립할 때까지 미혼모는 일과 가정 양립을 혼자 해야 해요. 아이와 삶이 안정되고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될 때까지 국가 지원이 있다면 미혼모들도 충분히 빨리 자립할 수 있을 겁니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미등록 아동을 방지하는 ‘출생통보제’가 국회에서 통과된 것을 환영했다. 부모가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보호출산제’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미혼모들에게)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를 물으면 경제적 어려움이라 답한다. 하지만 (정부가) 계속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미혼모들은 젊은 세대가 많은 만큼, 아이가 어릴 때 강하게 지원해주고 이후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혼모를 향한 세상의 차가운 시선 역시 여전하다. 결혼 전 임신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운 마음은 이들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로 내몬다. 쿠키뉴스가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을 통해 최근 2년간 분만 후 영아 살해 사건 하급심(1·2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공개된 11건 중 7건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한 미혼모였다. 산모와 영아의 안전보다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인지, 가해자 중 병원에서 출산한 사례는 없었다. 주거지 화장실이나 건물 화장실 등 병원 밖 사각지대에서 출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우린 누군가를 만나면 결혼했는지 물어요.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하면 ‘아빠는요?’라고 되묻는 사회죠. 아이가 네 살이 돼서야 가족에게 소개한 걸 후회해요. 두렵다는 이유로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면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최대한 빨리 가족에게 보여주면 아이가 더 사랑받을 수 있잖아요. 전 이제 ‘혼자 키워요’라고 말해요. 그게 흠은 아니잖아요.”
준비 없이 임신한 미혼모들이 더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입양 홍보 정보는 넘친다. 하지만 미혼모가 양육을 잘 할 수 있을지, 어떤 시설과 기관이 있는지, 어디에서 도움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은 알기 어렵다. 국내에 더 많은 미혼모 시설이 필요한 이유다.
“미혼모 시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복지 관련 직원이 있고, 출산·육아 정보도 얻을 수 있어요. 다른 엄마들과 어울려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요. 모두 처음엔 다 힘들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느끼더라고요. 이런 시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 역시 미혼모 보호시설 덕분에 인생이 달라졌다. 경상도 출신인 김 대표는 지난 2004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울로 올라왔다. 배 속엔 소중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원치 않은 아이였다. 임신 5개월까지 낙태, 입양, 양육 여러 고민이 들었다.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채 고민만 하는 사이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상담가를 통해 미혼모 보호시설인 애란원으로 향했다. 삼시세끼 식사는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 전문가 상담, 또래 임신부들과의 커뮤니티 등 장점이 많았다. 또 양육과 입양 정보를 알려주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처음엔 해외 입양을 결심했다. 임신 7개월이 돼서야 처음 산부인과 진료도 받았다. 아이를 입양 보내고 매일 눈물로 보내는 주변 미혼모들을 보며 양육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아이가 방긋 웃을 때마다 양육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애란원을 퇴소할 때가 되자 막막했다. 아이와 머물 방 한 칸 구할 돈도 없었다. 미혼모 시설에서 6개월, 중간의 집과 모자원 등에서 4년을 보냈지만, 계속 머물 순 없었다. 돈도 집도 없이 아이를 지켜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됐을 때쯤 작은 공방 사무실에서 아이와 살았다. 사무실에서 조리를 할 수 없어 굶다시피 했다. 주인집에 들킬까 염려돼 밤이면 불을 끄고 촛불에만 의지해 생활했다. 아이는 조그만 돗자리를 공방 한편에 깔고 자신만의 공간이라며 웃었다. 아이의 밝은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과거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김 대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두 눈 가득 고인 눈물이 보였다.
김 대표는 위기에 처한 임신부를 돕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협회 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의 따뜻한 손길은 큰 힘이 된다. 김 대표는 “많은 개인과 기업, 해외 입양인들의 관심과 물품 지원, 후원금 등 정성이 모여 (미혼) 엄마들에게 아낌없이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혼모를 위한 지원도 조금씩 늘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한부모가족 보호시설 퇴소자에게 지원하는 자립정착금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인상했다.
김 대표는 이제 ‘홀로서기’ 마무리 단계다. 애란원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느새 대학교에 입학했다. 김 대표는 “아이가 대학에 갈 때 ‘엄마는 너 스스로 잘 살았으면 좋겠고, 엄마도 너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잘 살겠다’고 말했다”며 “저희 엄마(미혼모)들도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초기에 지원이 잘 되면 엄마들도 더 빨리 자립할 수 있고 새로운 가정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저희 꿈은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세상에서 없어지는 거예요. 엄마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게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되길 바라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에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