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고립… 자립준비청년에게 진짜 필요한 건 [홀로서기]

결국엔 고립… 자립준비청년에게 진짜 필요한 건 [홀로서기]

백윤하 청년 활동가 인터뷰

기사승인 2023-07-13 06:00:13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이유로 혼자가 된 사람들이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혼자가 된 더 많은 이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홀로 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1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백윤하 청년 활동가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세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매년 2500명의 청년이 아동복지시설, 위탁가정 등을 떠나 자립한다. 보호자가 사라진 청년에게 국가는 제2의 보호자다. 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적응해 살아가려면 정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해 광주에서 자립준비청년이 생활고를 비관해 연이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후에야 정부는 제도 개선에 나섰고, 경제적 지원이 조금 늘었다. 하지만 경제 교육, 심리·정서적 지원 등 세밀한 정책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제 시작 단계다. 백윤하(27) 청년 활동가는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해가 아직 아쉬운 수준이라 본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 그룹홈, 가정위탁시설 등에서 생활하다가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청년을 말한다. 본인이 희망하면 24세까지 퇴소 연장이 가능하다. 1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백 활동가는 “지원정착금은 말 그대로 이 돈 가지고 알아서 정착하라는 것”이라며 “해방을 꿈꾸지만 시설에 갇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을 ‘나이가 됐으니 선택하라’며 무책임하게 사회로 내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은 보호 종료와 함께 자립정착금으로 1500만원을 지원받는다. 1993년 500만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1000만원에서 더 늘었다. 또 자산형성 지원통장인 디딤씨앗통장(CDA)을 합친 종잣돈을 갖고 독립한다. 보호종료 이후 5년간은 매월 40만원의 자립수당도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 고충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조금씩 나아지곤 있다지만, 주거·경제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백 활동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을 통해 집을 구하기는 이전보다 수월해졌지만, (자립정착금, 자립수당으론) 계약금과 생활비를 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환경도 열악하다. 지난해 9월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립준비청년 지하층 거주자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LH 전세임대주택 주거지원을 받아 서울에 거주하는 자립준비청년 1123명 중 211명(18.8%)이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통계청에서 조사된 서울시 전체 반지하 거주비율(5%)보다 4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LH 지원 한도 내에선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이 마땅치 않다. 자립준비청년들이 주로 반지하 주택을 찾는 이유다. 보육원 출신 자립준비청년인 백 활동가도 결국 돈 때문에 원가정으로 돌아갔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은 백 활동가는 장애가 있는 어머니가 혼자 자녀를 양육하기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설의 보호를 받았다. 10년 가까이 시설에서 생활한 그는 지난 2017년 500만원의 정착지원금을 받고 퇴소했다. 주로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했지만, 500만원으로 정착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20년 발표한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 절반 가까이가 주거지 선택 시 주거비(48.1%)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주택의 경우 매입임대는 월세 부담이, 전세임대는 이자 부담이 크다.

백 활동가는 “자립준비청년에게 주거 안정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설에서 다양한 이유로 원가정과 소통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특히 절반가량은 어려서 학대 피해를 경험한 이들이다. 퇴소 후 주거가 불확실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원가정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학대가 이뤄질 수도 있는 셈이다. 실제 보건복지부 ‘2021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 중 재학대 사례는 지난 2021년 기준 5517건(14.7%)에 달한다. 재학대 사례 중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는 96%다.

퇴소와 함께 인적 관계망과 도움 받을 곳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도 문제다. 정보도 부족한데 정보 접근 능력마저 떨어진다. 백 활동가는 “기관과 자립준비청년들이 모인 여러 커뮤니티, 정보방도 있어 잘 이용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서 “그런데 정보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힘겨워한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LH전세임대 계약 서류를 쓸 때, 퇴소 전엔 시설 선생님들이 도움을 줘서 문제가 없지만, 재계약을 하면 온전히 혼자 해야 해 어렵다”고 부연했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혐오차별 너머, 평등으로’ 토론회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원 확대 촉구한 백윤하 청년 활동가 모습.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

자립준비청년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지원전담요원도 부족하다. 정부는 지난 2021년 8개 밖에 없던 전담기관을 17개로 늘리고, 올해 전담인력을 120명에서 180명으로 확충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전담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지난 2021년 현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자립지원전담요원은 모두 267명이고, 이들이 돌봐야 하는 아동·청소년의 수는 2만2807명이다. 자립지원전담요원 1명이 85.4명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만큼 자립준비청년을 둘러싼 과제는 산적해 있다. 백 활동가는 “자립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고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자립시험’와 같은 것이 필요하고 이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연스럽게 경제 관념을 기를 수 있도록 현실적인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돈을 어떻게 잘 써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 사회에 나와 어려움을 겪는 자립준비청년이 많다고 한다. 백 활동가는 시설 내 경제 교육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시설을 나온다는 해방감에 지원정착금을 무계획으로 써버리는 경우도 많다. 원가정이 지원정착금을 빼돌리려한 사례처럼 사기에도 취약하다”고 말했다.

자립지원청년들을 위한 여러 지원책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는 정보 사이트나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도 시급한 문제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 기업 등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제대로 공유되지 못하면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백 활동가는 ‘관계망’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공공에서 지원하는 당사자 커뮤니티는 바람개비 서포터즈뿐이다. 그는 “퇴소하고 사회로 나오는 순간 맨땅에 헤딩하는 듯 살아야 한다. 외로워서 우울증에 걸리는 친구들도 많다”며 “(커뮤니티는) 당사자들끼리 통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서로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돼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누면 우울증 극복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백 활동가는 앞으로 사회에 나올 자립준비청년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퇴소하기 전 시설에서 정보기술자격(ITQ), 컴퓨터활용능력, 운전면허 등 사회생활에 도움 되는 자격증을 따면 좋겠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자립 자금을 모아서 퇴소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온·오프라인 당사자 모임도 적극 활동하길 바라고요. 당신은 혼자가 아녜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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