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법제화 될까… 환자도 업계도 의약계도 ‘불만’

비대면진료, 법제화 될까… 환자도 업계도 의약계도 ‘불만’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시행 2달… 지침 어기는 등 혼란 계속
응급피임약 등 오남용 우려 의약품, 버젓이 비대면 이용해 처방
“30% 수가 가산 과다해” 건보 재정 누수 지적도
국회 차원 논의는 아직… “8월 중순 이후 상임위 일정 잡힐 듯”

기사승인 2023-08-01 06:00:40
지난달 30일 서울 도봉구 한 의원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진료 과정이 취재진에 시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시행 2달여가 지났지만, 현장 혼란은 그대로인 분위기다. 재진 환자만 허용하는 등 원칙이 정해져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의료법 개정 외엔 방법이 없어, 법제화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지난 6월1일부터 추진하고 있다. 재진 환자를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의료 취약지 거주자에 한해 초진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선 이같은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양새다. 서울시약사회가 6월1일부터 7월14일까지 회원약국 571명을 대상으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현황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처방전의 80.5%가 초진환자, 18.2%는 규정에 위배되는 재진환자로 나타났다.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마약류·오남용 우려 의약품이 버젓이 처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11월2일부터 지난해 말까지 진료 환자 4만6650명에게 마약류·오남용 우려 의약품 등 ‘처방 제한 의약품’이 처방됐다고 밝혔다.

서울시약사회 조사에서도 응답 약국의 전체 비대면진료 처방전 중 절반 이상(50.5%)이 비급여 처방으로 나타났다. 비급여 처방약은 ‘응급 피임약’이 61.5%로 가장 많았고, 여드름 45.9%, 탈모 28.4%, 비만약 7.3% 순이었다.

약물 오남용 우려가 있는 만큼 비대면으로 처방할 경우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영희 서울시약사회 회장은 31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응급 피임약의 경우 28일 이내 중복해서 처방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호르몬 함량이 높아 생리불순, 부정자궁출혈, 난임 유발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여드름약, 탈모약의 경우 비대면진료 취지처럼 긴급한 약이 아닌 데다 기형아 유발 가능성 등 부작용 우려도 커 비대면 처방은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응급 피임약, 여드름약, 탈모약 등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지침에 처방 금지약품으로 포함돼 있지도 않은 실정이다. 권 회장은 “시범사업 지침에 응급 피임약 등의 처방을 금지해야 한다는 지침이 없다”며 “오남용 했을 때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제화할 경우 금지 의약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약계 뿐 아니라 시민단체도 비대면진료 업계도 환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간 이어진 비대면진료에 대한 평가가 먼저 이뤄진 뒤 원점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가 지난달 21일에 발표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불편 사례에 따르면, 접수된 860여건 중 ‘병원 방문 곤란’을 경험한 사례가 25.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약 배송 제한’으로 인한 불편 사례가 21.3%였다.

원산협 관계자는 “3년간 한시적 허용에서 올해 6월부터 실시 중인 비대면진료 시범사업까지 현황이나 평가 등이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는데, 이제 막 자문단을 통한 논의가 시작됐다”며 “1700만명 넘게 이용한 비대면진료에 대해 각 이해관계자의 산재된 의견만 갖고 결론을 내기 보다 명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법제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건강보험 재정 누수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현재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 수가는 대면진료보다 1.3배 비싼 수준이다. 기존 진찰료(100%)에 시범사업 관리료(30%)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31일 성명서를 내고 “현재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대면진료 수가를 대면진료보다 낮게 잡거나 동일하게 하는 것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30% 수가 가산은 과다하다”며 “130%의 수가는 공단부담금도 늘리지만 동시에 본인부담금을 30% 늘리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비대면진료의 다수 이용자인 고령의 만성질환자 입장에서 의사를 만나지 못해도 진료비를 더 내야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주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기에 일부 국민들은 ‘의료 이용 비용 증가’라는 문제에도 직면하게 된다”며 “건강보험 재정을 고민하지 않은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중단하고 사회적 논의부터 시작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법제화와 관련해 국회 차원의 검토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인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31일 “복지위 차원에서 여야 간 비대면진료 법제화에 관해 논의한 바 없다”면서 “8월 3째주는 지나야 복지위 차원에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야당 간사인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도 “원래 7월에 논의했어야 하는데, 국회 일정이 있어 상임위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면서 “8월 중순 즈음에나 상임위 법안소위 일정이 잡힐 것”이라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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