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에 요단강이 왜 나와…희한하게 웃긴 ‘좀비버스’

예능에 요단강이 왜 나와…희한하게 웃긴 ‘좀비버스’

기사승인 2023-08-15 06:00:02
‘좀비버스’ 스틸. 넷플릭스

서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한다. 생존자는 열 명 남짓. 그 안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을 버린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남을 살리려 자기 몸을 던진다. 배신이 판을 치고 영웅이 탄생하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 그것이 바로 ‘좀비 유니버스’다.

이런 사투를 기대한 시청자라면 지난 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좀비버스’가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K좀비 기원이 된 넷플릭스 ‘킹덤’과 달리, ‘좀비버스’의 좀비들은 느리고 둔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진짜 재미는 인간과 좀비가 벌이는 혈투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좀비에게 물린 희생자가 춤추며 요단강을 건너고, 바이킹에 갇힌 좀비가 욕지거리를 내뱉는 장면이 배꼽을 잡게 한다.

문상돈 PD(왼쪽), 박진경 CP. 넷플릭스

각본 없는 좀비쇼를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1위에 올린 장본인은 박진경 CP와 문상돈 PD. 최근 서울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두 PD는 “‘좀비버스’는 좀비를 소재로 쓴 코미디쇼”라고 소개했다. 프로그램엔 이시영 노홍철 박나래 딘딘 츠키 유희관 조나단 파트리샤 홍성우 덱스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10명이 출연한다. 제작진은 놀이공원과 마트를 통째로 빌려 좀비 세계관을 만들었다. 좀비 역할로 출연한 배우만 해도 200여명에 달한다.

“해외에서 제작한 좀비 리얼리티를 보니 ‘극한의 현실성’이 성립할 수 없겠더라고요. 시청자와 출연자 모두 좀비가 사람(배우)인 걸 아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 이질감을 비틀려고 했습니다.”

박 CP의 설명처럼 ‘좀비버스’는 현실과 가상의 균열을 웃음으로 승화했다. 좀비에 감염된 조나단을 친동생 파트리샤가 단호하게 외면하는 장면이나, 바이킹에 강제 탑승한 좀비들이 겁에 질려 욕설을 내뱉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MBC 재직 당시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라는 괴작을 만든 박 CP의 재치가 빛난다. 그는 “기본적인 웃음 코드는 그때와 비슷하다. 심각한 분위기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재밌다”고 했다.

밧줄을 타고 좀비 소굴로부터 벗어나는 덱스. 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아슬아슬한 박진감을 만든 데는 해군 특수전전단 출신 덱스의 활약이 컸다. 그는 다른 출연자를 구한 후 맨몸으로 밧줄을 타 위기를 벗어나고, 고립된 출연자들을 위해 영하 13℃ 바다에 뛰어들기도 한다. 문 PD는 “출연자들이 예상대로 행동한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덱스가 입수했을 때 가장 많이 놀랐다”면서 “촬영 당시 안전요원을 여러 명 배치하고 근처에 온수를 준비하는 등 안전사고에 대비했다”고 설명했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리는 분위기다. 박 CP는 “재밌다는 분도, 쓰레기 같다는 분도 계셨다”며 웃었다. 두 PD는 시청자가 많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일단 반응이 나와야 발전할 여지도 있다고 여겨서다. 출연자들이 대본대로 연기하는 것 같다는 지적엔 두 PD 모두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제작진은 상황만 설정했다”고 강조했다. 대신 좀비 역의 배우들과 여러 번 리허설을 하고, 출연진 행동에 따라 상황 설정을 변경하면서 극적인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죽을 사람을 정해놨다거나 덱스에게 물에 빠지라고 시켰을 거라고 추측하는 분들이 있어요. 전혀 아닙니다. 대본은 없었고, 출연자마다 캐릭터를 설정해주지도 않았어요. 과격하게 말하자면 ‘좀비버스’는 뇌 빼고 봐야 재밌는 프로그램이에요. 개연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즐기기 어려울 수 있죠. 대신 한 번 ‘좀비버스’의 맛을 보면 점점 빠져들게 될 겁니다.” (문 PD)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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