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를 위해”… 마이크로 취향도 공유하는 청년들

“온전히 나를 위해”… 마이크로 취향도 공유하는 청년들

기사승인 2023-08-26 06:00:19
서울 홍익대 근처 소품샵 오브젝트에 놓여있는 웜스멜 브랜드의 오리 오브젝트. 다 비슷해보이지만, 길이나 얼굴 너비 등 미묘하게 다르다. 청년들의 취향도 사소하고 소소한 부분에서 다르다.   사진=유채리 기자

# 김민지(22)씨는 다른 수건 대신 극세사 수건만 쓴다. 부드럽고 흡수가 잘 되기 때문이다. 빳빳한 수건은 어떻냐고 묻자 고개를 저으며 말을 흐렸다. SNS에서 한 누리꾼은 수건의 무게와 몇 수인지에 따라 사용하는 용도를 구분해놓기도 했다. 40수 이상은 닦이는 느낌이 덜하고 180g 이상은 불필요하게 무거워 잘 쓰지 않는다는 기준도 있다.

# 쥬스업, 프릭션, 제트스트림, 시그노, 모나미. 한 유튜버는 검은색 볼펜 12종류를 추천하는 영상을 올렸다. 같은 색이어도 필기감이 모두 다르다. 한 회사의 제품만 쓰기도 하고, 사용 목적에 따라 바꿔가며 쓰기도 한다. 필기구를 추천하는 ‘내 취향에 맞는 검은펜을 찾아보자!’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5만회를 기록했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취향에 관심을 갖고 공유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SNS에 올릴만한 장소, 소품, 옷 등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취향에 열광하던 것에서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사소한 취향까지 확장되는 분위기다.

최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에 두고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미이즘(Meism)’이란 표현이 자주 쓰인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글들도 곧잘 눈에 띈다. 연필에 집중해서 판매하는 한 가게는 4만여명이 SNS를 팔로우했고, 취향 공유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도 있다. 한 브랜드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잡지 ‘매거진 B’나 하나의 소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아무튼’ 시리즈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스테디셀러다.

유튜버 SODAM 소담한작업실의 ‘내 취향에 맞는 검은펜을 찾아보자!’ 영상. 유튜브 화면 캡처

청년들은 이 같은 변화를 체감한다고 말한다. 김유리(23)씨는 “요즘엔 다들 자신만의 취향이 뚜렷한 거 같다”라며 “주변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다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김민서(25·대학생)씨는 약속이 없거나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도 자신만의 패션 아이템을 챙긴다. “누군가 보고 알아차리지 않더라도, 내 만족을 위해서 한다”고 설명했다.

SNS 덕분에 청년들이 자신의 취향을 개발하고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민서씨는 “예전에는 자기 생각을 숨기거나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젠 강력하게 주장을 펼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며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새내기 직장인인 차현정(25)씨도 SNS를 배경으로 짚었다. 차씨는 “지금 세대는 자신을 알아갈 기회가 많다”며 “미디어나 다양한 경로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예전 세대보다 보이지 않는 취향도 만들어지는 듯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소소하고 사소하지만 자신만의 것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를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나의 시대의 도래’라고 분석했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일과 여가, 욕망과 취향, 자존감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의미한다.

다이어리를 꾸미기 위해 모은 스티커. 독자 제공

엽서, 스티커와 같이 다이어리를 꾸미는 용품을 사고 기록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조민경(27)씨 역시 보이지 않는 취향을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매일 쓰지는 못하지만, 추억하고 싶은 일을 기록하며 그때의 기분도 함께 꾸민다”며 “내 감정을 위해, 온전히 나를 위해 한다”고 말했다. 곽설연(18)양 역시 “이젠 유행을 좇아가는 데서 벗어나 자신만의 것을 확실하게 하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유명 의류 플랫폼, 유명 소품 등 유행을 따라가는 일에 피로도가 쌓인 결과란 분석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뭐가 유행하는지 찾고 따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비교까지 된다”며 “피로감이나 박탈감이 쌓이는 것에서 벗어나, 청년들이 자신을 개념화하고 정체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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