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13세 소년 송중기는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이 속담을 적어넣었다. 한류 스타로 대성해 다양한 인물을 연기할 앞날을 예견이라도 한 걸까. 2008년 영화 ‘쌍화점’(감독 유하)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 송중기는 군복 차림으로 뭇 여성을 설레게 했다가도(KBS2 ‘태양의 후예’) 이탈리아 마피아로 변신해 악을 처단했다(tvN ‘빈센조’). 다음 달 11일 개봉하는 영화 ‘화란’(감독 김창훈)에선 폭력 조직 중간보스를 연기한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뽀얀 피부는 기름때와 흉터로 얼룩졌다.
‘화란’은 현실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가정폭력 피해자 연규(홍사빈)가 치건(송중기)을 만나 폭력 조직에 발 담그며 벌어지는 이야기. 제작비가 40억원대인 이 저예산 영화에 송중기는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자신의 출연료 때문에 제작비가 늘면 흥행을 위해 영화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추가될까 걱정해서다. 25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송중기는 “시나리오가 좋아서 개런티를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노 개런티 제안이 계속될까봐 뒷얘기를 설명하고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이렇게 덧붙였다. “(출연료) 받을 겁니다. 하하하.”
송중기는 “스산하고 끈적끈적한 영화가 하고 싶던 차에 ‘화란’ 시나리오를 봤다”며 “초고를 본 후 영화 ‘똥파리’(감독 양익준)를 봤을 때가 떠올랐다”고 했다. 작품은 그에게 도전이었다. 꽃미남 이미지와 정반대인 역할을 연기해서만은 아니다. “치건이 연규를 구해주는지 망치는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지점”을 표현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치건의 어사무사한 뉘앙스를 고민하던 송중기는 대본에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적어 넣었다. 송중기는 “대사보단 이미지와 정서로 표현되는 게 많다. 친절한 영화가 아니라 어떤 반응도 받아들일 각오가 됐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송중기는 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영화 ‘늑대소년’(감독 조성희)과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흥행시킨 뒤에도 꽃미남 스타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에선 냉철한 광복군을 맡았고, JTBC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분노를 차갑게 식힌 복수자의 얼굴을 보여줬다. 그는 “다양한 정서를 지닌 작품에 여전히 목이 마르다”고 했다. “해외 제작 시스템과 새로운 문화권을 경험하고 싶다”며 몇 년 전 해외 시장에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던 소년 시절 좌우명을 삶에서 실천하는 셈이다.
“지루한 일에는 집중하기 어렵다. 그래서 새로움을 찾아 도전한다”는 송중기의 또 다른 자아는 아빠다. 지난 1월 영국 배우 출신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와 결혼해 같은 해 6월 첫아들을 봤다. “아내와 함께 영화 한 편을 보기 힘들 정도”로 육아는 고되지만, 아들 사진을 기자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영락없는 ‘고슴도치 아빠’였다. 송중기는 “아직도 (아들이 생긴 것이) 얼떨떨하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아! 나 아빠 됐지!’ 한다. 아내와 나 모두 육아가 처음이라 서로 힘을 북돋우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