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도 없는 시골 동네...엄마의 '빵 셔틀'(?)

버스도 없는 시골 동네...엄마의 '빵 셔틀'(?)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아동청소년 그룹홈 아홉 자녀 엄마의 '직진'](22)
"엄마 마트 가면 안돼요?"...읍내 편의점 군것질 위한 읍소 작전

기사승인 2023-10-12 06:00:27
집 앞 읍내로 향하는 길. 메타세콰이어길이다. 아이들은 군것질을 위해 읍내에 가고 싶어 한다. 사진=전성옥 제공

아직도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이 있다. 우리집이 바로 그곳이다. 군내버스도 다니지 않는 동네. 그런 곳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까? 읍에 나가고 싶어도 혼자서는 갈 수 없다. 택시를 부르거나 엄마를 졸라야 한다.

주말이면 아이들의 심심한 입은 엄마를 부른다.

“엄마, 마트에 가면 안돼요?”

“엄마, 저녁하기 귀찮잖아요. 그냥 우리가 컵라면 사서 먹으면 안될까요?”

“귀찮은 건 저녁이 아니고 너희들을 몽땅 데리고 마트에 가는 거야.”

“주말에는 엄마도 좀 쉬자.”

기분 따라 달라지는 엄마의 답에 아이들은 목 놓아 엄마를 부른다.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너나없이 한마디씩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에이스 과자 사올께요. 거기다 커피 찍어드시는거 좋아하잖아요. 커피도 타 드릴께요.”

“시장도 우리가 봐 올께요. 우유도 필요하잖아요.”

귀찮은 엄마를 구원하듯 때마침 들어오는 아빠. 요구사항이 아빠에게로 옮아간다.

“아빠, 오늘 한가하세요?”

“마트 털로 가요. 아빠가 좋아하는 과자 사 드릴게요. 네!”

과자라는 유혹에 아빠는 더 이상 아빠가 아니다. 그저 아이들의 꿰임에 넘어가는 문제아(?)가 되고 만다.

“그래! 가자! 마트나 털로 가자.”

갑자기 왕따가 된 엄마는 구겨진 얼굴을 하고 차에 올랐다. 신이 난 아이들의 틈 속에서 아빠라는 작자는 마누라의 기분 따윈 아랑곳 하지 않는 그저 과자를 먹을 생각에 행복한 딱 큰아들 수준이다.

도시 아이들과 달리 대형 마트나 백화점 쇼핑을 자주 할수 없는 형편이니 읍내의 마트는 행복충전소나 다름없다. 그것도 엄마 아빠를 졸라야만 갈수 있는 곳이니 얼마나 애달픈 곳인가 말이다.

"어기껏해야 과자 몇 개에 음료수, 컵라면으로도 기분 좋은 군것질 장소다.

봉지 봉지에 사온 간식거리들은 거실을 풍성하게 한다. 서로 나눠주고 나눠먹고, 불량식품(?)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행복한 아이들이다. 아빠에게 밀린 엄마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우리집 제일 큰 언니가 사온 에이스 비스켓에 봉지커피를 끓여 놓은 엄마도 잠시 행복하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거대하지 않아도 된다. 행복은 그저 작은 마트에서 간식을 사먹는 사소함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군내 버스가 안다녀도 집 바로 앞에 편의점이 없어도 괜찮다.

우리에겐 함께 할수 있는 가족이 있으니 정말 괜찮다. 나른하고 심심한 주말 오후를 풍성하게 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배부르게 먹고 난 아이들은 엄마를 위로한다.

“엄마, 오늘 저녁은 땡이에요. 푹 쉬세요.”

“그깟 컵라면으로 저녁이 되겠어? 나중에 배고프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8시를 넘기면서 아이들은 또 졸라대기 시작한다.

“배고파요. 엄마. 먹을 거 없어요?”

그러면 그렇지.

“족발 시켜먹자.”

늦저녁 엄마와 아빠는 주문해 놓은 족발을 가지러 읍으로 달려야 한다.

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그가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부는 서울에서 낙향을 결심했다.  전성옥은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전성옥(수필가) jsok00@hanmail.net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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