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이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에 따른 대규모 미수금 발생으로 실적 악화를 면치 못하게 됐다. 이미 증권가에선 키움증권의 연간이익 전망치를 대폭 낮추고 있는 상황이다. 타사 대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한 미수거래 증거금률로 계좌가 악용된 만큼, 리스크관리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3일 종가 기준 키움증권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3.93% 급락한 7만6300원으로 확인됐다. 지난 11일 주주환원정책 강화 소식에 15% 오른 10만7500원을 기록했으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도 큰 낙폭을 나타낸 셈이다.
이같은 주가 하락은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로 인해 5000억원대의 미수금이 발생해서다. 키움증권은 지난 20일 공시를 통해 “영풍제지 하한가로 인해 고객 위탁계좌에서 미수금이 발생됐다”며 “20일 기준 해당 종목의 미수금 규모는 약 4943억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키움증권의 올 상반기 순이익 4258억원을 초과한 수준이다.
통상 증권사는 개인투자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2영업일 뒤 대금을 갚도록 하는 미수거래를 제공한다. 또 미수거래가 남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증거금을 요구한다. 키움증권의 경우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가 터진 지난 18일까지 증거금률을 40%로 책정했다.
증권사가 증거금률을 100%로 설정하면 해당 종목은 현금으로만 매수가 가능하다. 미수거래가 차단된다는 얘기다. 예컨대 키움증권이 설정한 40%의 경우 증거금 40만원으로 100만원어치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다. 나머지 60만원은 실제 주식이 계좌로 입고되는 날(거래일로부터 2영업일) 이전까지 납부하면 된다.
그러나 영풍제지는 뚜렷한 이유 없이 올해 들어 700%가 넘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과도한 오름세를 보인 종목이었다. 이에 따라 키움증권을 제외한 국내 주요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삼성)들은 지난 2~5월 중 영풍제지 미수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다. 키움증권은 하한가를 기록한 이후에야 100%로 인상했다. 리스크 관리가 미흡했단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증권가에선 이번 대규모 미수금 발생 사태로 키움증권의 실적이 악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KB증권은 키움증권의 올해 연간이익 전망치를 5293억원으로 직전 대비 23.3% 하향했다. 영풍제지 미수금 관련 비용 부담을 오는 4분기 실적에 반영함에 따른 결과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관련 미수금 규모를 4943억원으로 공시했다. 영풍제지의 거래정지 전 3일 평균 거래대금이 3464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수거래는 큰 비중을 차지했다”며 “미수 증거금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키움증권에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고 판단된다. 즉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키움증권의 예상손실금액은 거래정지가 풀리고 나서 거래가 이루어지면, 반대매매가 종료된 이후 일차적인 예상 손실금액이 집계될 것”이라며 “이후 고객 변제 규모에 따라 최종 손실금액이 확정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로 키움증권은 추가 충당금 적립에 나설 전망이다. SK증권은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시 차액결제거래(CFD) 등 관련해 약 700억원의 충당금을 반영한 데 이어 이번 사태에도 추가 적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모기업 대양금속이 영풍제지 주식을 담보로 주식담보매출을 차입한 사실을 감안하면, 채권 은행의 추가적인 매도가 나타날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이번 사태로 인한 추가 충당금 등 요인을 볼 때 단기 부정적 주가 흐름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설 연구원은 “추가로 키움증권은 리스크 관리 목적으로 지난 19~20일에 걸쳐 일부 종목에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다”며 “해당 종목에 대한 우려 확대에 따른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국내 신용평가업계는 키움증권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은 보고서를 통해 키움증권의 리스크 관리 역량 및 내부통제 시스템 체계화 여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가 회사의 평판 및 신뢰도에 영향을 미쳐 고객기반 훼손으로 이어지면 중장기적 실적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나신평 측 분석이다.
키움증권은 수탁수수료 기준 시장점유율 국내 1위 증권사로 고객기반이 사업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아울러 미수거래 가능 종목 범위가 넓고, 증거금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신용공여·미수금 등 위탁거래 관련 이자수익은 매년 30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나신평은 “파급효과가 위탁매매 점유율 하락과 이자수익 축소 등으로 이어진다면 중장기적 이익안정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향후 금융당국 조사과정에서 키움증권의 리스크관리 및 내부통제시스템에 중대한 미비점이 드러나거나, 평판 전하 및 고객 이탈 등 영업기반 훼손으로 중장기적 사업안정성이 하락했다고 판단될 경우 신용등급 또는 등급전망에 반영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키움증권 측은 “반대매매를 통해 미수금을 회수할 예정”이라며 “고객의 변제에 따라 최종 미수채권 금액은 감소될 수 있다. 추후 손실과 관련한 확정사항이 있을 경우 재공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