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승호는 웨이브 드라마 ‘거래’에서 ‘막장 인생’을 연기한다. 거액의 도박 빚을 진 채 도망치듯 입대했다가 전역 후엔 친구의 납치 자작극에 동조하는 인물이다. 유승호는 이 작품 촬영 때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걱정을 제가 했던 것 같아요. 시청자가 낯선 내 모습을 어색해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23일 서울 여의도동 한 회의실에서 만난 유승호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유승호는 일단 머리부터 밀었다. “군 시절 선임 중 ‘전역 후 새 삶을 살겠다’며 머리를 짧게 깎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만든 설정이었다. 30대 초반에 접어든 유승호는 갓 사회로 돌아온 20대 청년 이준성을 어색함 없이 소화했다. 그는 “처음엔 내게 너무 큰 옷을 입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가슴에 쌓였다. 준성이가 내 안에 들어온 듯했다”고 돌아봤다. 함께 연기한 김동휘·유수빈 등 동료 배우들은 물론, 메가폰을 잡은 이정곤 감독과도 막역하게 지내며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납치극을 주도한 의대생 송재효(김동휘), 자신을 납치한 친구들을 “100억원도 벌 수 있다”고 꼬이며 반격을 준비하는 박민우(유수빈)와 달리 준성은 우유부단하다. 그가 끌어다 쓴 사채는 아버지 목숨을 위협한다. 민우를 보호하려다가 일을 키우기도 한다. 답이 보이지 않는 인생. 유승호는 “끝이 없어도 계속 달려가려고 하는 마음”을 품고 준성을 연기했다. “준성은 납치극을 벌이면서도 최소한의 선을 지키려고 한다”며 “마지막 8화에선 억눌려온 스트레스가 준성의 방식대로 폭발할 것”이라고도 귀띔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촬영장에서 어른들과 부대꼈던 유승호는 한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른이었고 그들이 멋져 보였다. 어른이 되면 뭔가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기대가 그에겐 있었다. 저절로 실현되는 목표는 없었다. 그래서 유승호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범죄 스릴러에 도전한 것도 “내게 편한 것만 추구하지 말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그는 이 작품을 들고 배우로서는 처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첫 GV(관객과의 대화)도 마쳤다. 작품 홍보차 SBS ‘런닝맨’도 찾았다. ‘24년차 배우’란 수식어는 여전히 무겁다. 도전을 앞두고는 아직도 겁이 난다. 그래도 유승호는 매일 두려움에 맞서고 있다. 그는 “내가 나에게 당당해질 때”를 향해 간다.
“어렸을 땐 30대가 되고 싶었어요.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저는 지금도 어린 시절에 머무른 듯한 느낌이에요. 나이를 먹으면 단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저는 여전히 약하고 말랑말랑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매일 다짐해요. 내 두려움을 넘어서자고. 더 잘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잖아요. 그래서 뭐든 도전해보려고 해요. 별 것 아닌 일도 겪어 보고 싶어요. 그 안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길 기대하면서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