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 감독이 빚어낸 독특한 비관론 [쿠키인터뷰]

‘뉴 노멀’ 감독이 빚어낸 독특한 비관론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11-12 06:00:06
영화 ‘뉴 노멀’을 연출한 정범식 감독. 언파스튜디오 제공

영화 ‘뉴 노멀’(감독 정범식)은 클리셰를 벗어나면서도 고전 공포영화 같은 매력을 지녔다. 귀신이 갑자기 등장하거나 주인공이 굳이 공포 상황을 찾아가는 뻔한 장면은 없다. 등장인물은 왠지 인상들이 익숙하다. 심심해 보이던 이 영화, 하지만 볼수록 뇌리에 강렬히 꽂힌다. 여섯 개로 나뉜 이야기들이 하나로 묶일 때면 기묘한 여운마저 맴돈다. 6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범식 감독은 “고립된 이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뉴 노멀 시대를 관객이 직접 느끼길 바랐다”고 했다.

‘뉴 노멀’을 연출한 정범식 감독은 국내 공포영화계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영화 ‘기담’을 비롯해 ‘무서운 이야기’와 ‘곤지암’ 등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그런 정 감독이 이번에는 귀신 아닌 사람에 주목했다. 영화를 처음 기획한 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팬데믹 시기. 고립된 사회,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는 뉴스를 보며 그는 어쩌면 현실이 더욱더 무서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백주대낮에 칼부림이 일어나는 요즘 세상에 귀신이나 괴물 나오는 것보다는 현실을 장르적으로 가공한 영화가 더 섬뜩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택한 건 평범함이다. 등장인물들은 주위에서 마주칠 법한 외모와 옷차림으로 익숙함을 느끼게 한다. 이외의 정보는 의도적으로 노출하지 않았다. 몰입을 돕기 위해서다. 관객은 고립된 인물들이 한 데 엮이는 과정에서 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영향을 끼쳐왔던 걸 알게 된다. 감독은 “우리가 살고 있는 뉴 노멀 시대가 바로 그런 것”이라며 “이런 현실이 일상으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뉴 노멀’을 만들었다”고 힘줘 말했다.

‘뉴 노멀’ 스틸컷. (주)바이포엠스튜디오 

‘뉴 노멀’은 각각의 주인공, 각자의 이야기, 개인의 선택으로 채워진 옴니버스 장르극이다. 극이 담은 여섯 챕터는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챕터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연출법을 시도한 감독의 의도다. 미국식 시트콤과 구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프레드 히티콕과 쿠엔틴 타란티노를 향한 헌사, 홍콩 영화 ‘중경삼림’(감독 왕가위) 오마주 등 여러 의미를 담았다. “스릴러 서스펜스 영화의 고전적인 원칙은 지키되 고정관념을 비틀고 트렌드에 맞게 이야기를 꾸미려 했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독특한 개성을 가진 신개념 공포영화가 탄생했다.

영화는 각 개인의 하루를 비춘 뒤 이들이 각자 ‘혼밥’ 중인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가해하고 희생당한 모든 이들은 그 장면에서만큼은 평소와 다름없이 나 홀로 식사를 즐긴다. 얼핏 평안한 분위기 같지만 영화를 다 본 관객 입장에선 묘한 씁쓸함이 피어오른다. 우리 사회를 비추려 한 감독의 의도다. ‘뉴 노멀’을 구성하는 열쇳말은 고독과 고립이다. 개인 문제로 치부되는 고독이 범죄나 자살 등 사회문제로도 연결되는 현시대가 ‘뉴 노멀’에 그대로 담겼다. 감독은 손에 잡히는 희망보다 적당한 비관을 보여주는 게 더 큰 시사점을 가지리라 믿는다. 감독은 “각자의 삶을 연결하는 건 감독 몫이지만, 이면의 의미를 발견하는 건 오로지 관객의 몫”이라며 “서스펜스부터 웃음까지 영화적인 유희가 다양하게 작용하는 이 ‘독특한 비관론’을 즐겨 달라”며 웃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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