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20대)씨는 지난 15일 하루 동안 팝업 스토어(이하 팝업) 세 군데를 방문했다. 서울 영등포구 한 백화점에서 각각 열린 판다 푸바오 팝업, 크리스마스 마을 분위기의 공간에 대형 트리 팝업, 디즈니 팝업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는 16일엔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스펀지밥 팝업에, 17일엔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쥬라기 공원 30주년 팝업에 갔다.
‘취미가 팝업’이라고 할 정도로 팝업에 자주 방문하고 많은 비용을 들이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정 기간만 문을 여는 팝업을 순회하거나 재방문하는 일이 청년들에게 하나의 문화가 된 분위기다.
15일 푸바오 팝업에서 만난 최모(31)씨는 벌써 네 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최씨는 “주말에도 오려고 한다”라며 “평소에도 가다가 팝업이 보이면 들린다. 관심 있는 브랜드 팝업이 생기면 앞으로도 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산 앨범, 자석, 마들렌 등을 포함해 지금까지 푸바오 팝업에 총 90만원 정도를 썼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9일 문을 연 푸바오 팝업은 하루에 일곱 번 입장객을 받는다. 1시간에 150명 정도 입장하니, 하루 1000명 이상 방문하는 셈이다.
청년들도 주변에 팝업에 자주 가는 이들이 많다며, 팝업 방문을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푸바오 팝업에서 만난 이모(26)씨는 “최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팝업에 간다”라며 “주변 친구들은 더 자주 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오재욱(28)씨 역시 “팝업에 가는 게 유행이 된 것 같다”라며 “어떤 팝업이 있는지 SNS에서 찾아보는 편이다. 친구들이 가자고 할 때도 있어 종종 즐겨 간다”고 했다. 이날 위스키 팝업에서 만난 한 관계자도 “전체 방문객의 5~10% 정도는 재방문 고객”이라고 귀띔했다.
줄서지 않고 대기번호…낮아지는 팝업 진입장벽
최근 팝업이 인기를 얻으며 그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11월 한 달 동안 문을 연 팝업만 전국에 54개다. 팝업이 다수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서울 성수동에서만 한 달 동안 약 20개의 팝업이 열렸다. 서울 영등포구 한 백화점이나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인근에서도 다수 팝업이 동시에 열려 한 번에 여러 곳을 방문하기 수월하다. 청년들이 취미처럼 팝업에 골라서 갈 수 있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서울·수도권 외 지역에도 다양한 팝업이 열리고 있다. 지난 7월28일부터 8월27일까지 부산에선 부산 지역을 주제로 한 팝업이 열렸다. 기념사진을 찍는 포토존과 부산과 관련된 옷, 스티커 등을 구입할 수 있게 했다. 대구에선 지역 유명 디저트들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팝업이 열리기도 했다.
사전 예약으로 방문이 편리해진 것 역시 팝업의 진입장벽을 낮춘 요인이다. 최근 팝업들은 일찍부터 행사장 앞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포털 사이트를 통해 팝업 방문을 미리 예약하거나 현장에서 대기를 걸어 입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예약자가 많아도 현장에서 대기를 걸어놓고 다른 곳에 있다가 알림을 받고 다시 찾아가 입장하는 식이다. 15일 대형 트리를 보러 온 김관식(23)씨는 “오후 1시에 왔을 때, 대기 번호가 1600번이었다”라며 “그래도 돌아다니면서 다른 곳도 구경할 수 있어서 기다리는 것이 힘들지 않다”고 설명했다.
팝업 정보를 제공해주는 SNS 계정도 인기다. A 계정엔 약 14만명, B 계정엔 약 4만여명이 팔로우해 매번 업데이트 되는 팝업 정보를 공유 받고 있다. 팝업 정보를 공유하는 한 SNS 계정엔 친구를 태그하며 “어디 갈지 골라봐” “여기 다 돌아다니자”라는 댓글이 다수 달렸다.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 한 가지에 집중해서 관련된 팝업들을 소개하거나, 특정한 팝업에 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알려주는 홈페이지도 나타났다.
DJ 공연에 실내 보트도…문화 체험으로 확장 중
과거엔 특정 캐릭터나 브랜드 상품을 모아서 판매하는 유형의 팝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가수의 앨범 발매를 기념으로 한 팝업, 유명 작가의 책 출간 맞춤형 팝업, 뮤지컬 등 공연에 맞춘 콘셉트로 꾸며진 곳 등이 그렇다.
최근 팝업은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과거엔 특정 캐릭터나 브랜드 상품을 모아서 판매하는 유형의 팝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수의 앨범 발매나 작가의 책 출간을 기념하는 팝업이 열리는 등 특색 있는 팝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출간을 기념해 열린 팝업은 기차역 콘셉트로 꾸며졌고, 뮤지컬 ‘마리 퀴리’를 기념해 만들어진 팝업에선 뮤지컬의 주요색인 초록색 칵테일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문화 공간처럼 꾸민 팝업도 등장했다. 팝업에서 실내 보트를 타거나, 유명 브랜드 향수 만들고, DJ 공연을 열기도 한다. 마스터 디스틸러(위스키 생산자)를 초청해 테이스팅 클래스, 사인회를 여는 팝업도 나타났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만난 이모(35)씨 역시 “평소 체험하기 어려운 것들을 팝업에서 할 수 있어 좋다”라며 “오늘 처음 팝업을 왔는데, 앞으로 자주 다닐 듯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최근 청년들이 팝업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선물 같은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희소성도 있으니 본능적으로 팝업에 끌리는 거 같다”라며 “자신에게 주는 선물처럼 위로의 의미가 되기도 하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팝업에만 몰두하는 건 유의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